그림이야기

[오늘의 미술] 엄숙함에 대한 조롱

marcion 2009. 3. 17. 10:18

 빌리 바우마이스터, 머리를 그려넣은 아르노 브레커의 ‘복수자’, 26.0×18.5cm, 1941




 

조작된 설득, 위협, 기만 등의 전략을 연상시키는 단어 ‘선전propaganda'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20세기정치선전예술>(토비 클락, 예경)에 나오는 첫 구절입니다. 원래는 종교적 복음의 전파, 정치적 신념의 유포등의 중립적인 표현인 프로파간다라는 말이 술수와 기만이라는 코드로 읽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세기를 휘감았던 이데올로기 전쟁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히 나찌정권은 대중매체의 정치적 힘에 대해서 역사상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골적인 정치선전선동의 그림도 있었지만 나찌정권의 그림이나 조각, 영화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띠게 되는데 완벽한 육체, 순수한 정신, 영웅적 묘사를 보면 그것이 비록 나찌정권의 도구라는 것을 모르고 보면 '위대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찌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었던 레니 리펜슈탈 의 영화 '올림피아' '의지의 승리'같은 작품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대단한 작품들입니다. 시대적 배경과 그녀의 정치성향을 알게 된다면 이 작품들은 잘 만들어진  선전선동물에 불과하겠죠.


위 그림은 빌리 바이마이스터의 <얼굴을 그려넣은 아르노 브레커의 "복수자">입니다. 위 작품의 탄생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941년부터 일체의 공식 전시가 금지된 ‘퇴폐미술가’빌리 바우마이스터는 이 같은 박해 상황에서도 전위미술가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를 잃지 않은 대표적인 작가였다. 그는 ‘위대한 독일 미술’전 전시장에 여러 번 들렀는데,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아르노 브레커 등의 작품 엽서 사진을 구한 다음 거기에 낙서 등 가필을 함으로써 이들 관변 미술에 전복적인 조롱을 보냈다.

브레커의 조각 <복수자> 사진 엽서를 사서 작품의 은밀한 부위에 만화 같은 사람 얼굴을 그려넣어 유머와 풍자와 ‘화룡점정’을 더한 <머리를 그려넣은 아르노 브레커의 ‘복수자’>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힘이 억압에 대한 저항임을 새삼 확인해주는 유머러스한 사례이다.


                                                미술로 보는 20세기 / 이주헌 지음 / 학고재 출판사



 


  히틀러한테 '타락한 예술가"로 낙인 찍힘으로서 작품활동을 중단했던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독일의 대표적 추상화가입니다. 그런 그가 나찌정권에 종사했던 브레커의 조각의 그림에 살짝 낙서를 해넣음으로서 통쾌한 조롱과 복수를 한 것입니다.

독재자들은 대개가 근엄, 존엄, 애국, 희생, 영웅같은 주제들을 좋아합니다. 근엄함과 엄숙함, 조작된 영웅에 대한 그의 발칙함은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