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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조선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
인물 | 2009. 4. 24. 11:57
정여립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공화주의자로 불리우는 시대의 풍운아입니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인민들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다.


지금 들어도 섬찍할만한 말들을 당당하게 쏟아냈던 인물입니다. 정여립만큼 역사학계에 논란이 되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는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어서 양반, 상놈, 농민, 노비, 백정, 무당, 사당패등 신분고하를 부정하며 모두가 평등한 대동세상을 꿈꾸었던 인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은은 만인보에서 다음과 같이 정여립을 노래합니다.


성리학 주리노선은 천지 음양 귀천 상하 계급노선입니다
그런데 좌파 주기철학 일체 만물의 평등노선입니다.
바로 이 화담 율곡 주기론을 이어 정여립은
그 것을 더 발전시켜 허균이 자유주의와는 또 달리
앞장선 천하 평등노선을 강화합니다.


워낙 성격이 강직해서 적들도 많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정여립이 살던 시절에는 서구로부터 성경등 새로운 사상들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는 이런 사상들을 앞장서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의 사상은 후에 실학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에서도 보다시피 정치적, 이념적 이단아를 기득권층에서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그는 대역죄로 몰려서 관군에 쫓기다가 아들과 함께 자결했다고 전해집니다.(물론 송강 정철일당들에게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정여립의 사망뒤에 그와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선비들이 몰살을 당하게 되는데 서인들이 동인들을 1000여명 넘게 집단살해한 기축사화라고 불리우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소위 엄격한 유교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몰살되게 되었고, 조선의 멸망을 재촉하는 중대한 시발점이 됩니다.


16세기말 개혁적 선비의 떼죽음은 결국 임진왜란 때 인재 부족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조선왕조의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선비들은 더 이상 바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조선 사회를 썩게 만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 처질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신정일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임진왜란 역시 정여립은 선구자였습니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지만 조정에서 먹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여립은 아예 스스로 대동계를 이용해서 군사조직을 훈련시켜서 왜구들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정여립같은 이의 죽음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동학난, 일제강점으로 이어지는 우리민족의 외세에 의한 시달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글을 포스팅하게 된 이유는 정여립에 대한 글을 찾던 중 위키피디아의 정여립에 대한 설명을 읽고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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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송강 정철이 살아남아서 그의 정치적 정적에게 대한 평가를 한 것 처럼 기술했더군요.
정여립을 '모반자'였고 '성격이 사납고 잔인했'다고 표현했으며, 대동계를 '불평객'들을 모아 군사훈련이나 시키는 조직으로 폄하하였더군요.

위키피디아 라는 속성상 정여립과 연관시켜서 특정지역을 역모의 땅이라고 폄하하고 시킨 목적을 가진 자가 올린 글처럼 보입니다.

정여립이 그의 스승 이이를 배반했다는 것은 두고두고 후세가 평가하는데, 지금 관점으로 보면 정여립이 율곡 사후에 그의 한계를 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보입니다. 이율곡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현실 참여를 했지만 원론적인 사상가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정여립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의 품에 머물러 있지 못하였겠지요.


어떤 이들은 정여립을 영국의 공화주의자 올리버 크롬웰에 비교하곤 합니다. 왕의 신권설을 부정하고 그를 처형해버리고 최초의 영연방공화국을 창설한 크롬웰의 정치적 역정과 성격은 정여립과 닮아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인민들에게 해가 되는 왕은 살해해도 된다고 주장했던 정여립은 시대를 너무 앞선 인물입니다. 그래서 단재 신체호는 그를 그가 죽고난후 300년 500년 후에나 제대로 평가될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전라북도 지역은 정도령이 나타나 세상을 구한다는 토속 설화가 살아있습니다. 그 것은 아마도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했던 민중들이 그의 부활을 애절하게 기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글  :
대동세상 꿈꾼 혁명아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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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6 - 불특성 다수의 힘을 믿어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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