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주권개념은 여전히 경제교육에서 인정받는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경제체제를 변호할때 쓰인다. 수요곡선과 방정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략) 그러나 시장경제가 소비자에게 주권이 있는 체제라는 믿음은 우리사회에 가장 만연한 사기중에 하나이다. 소비자를 조종하고 통제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물건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용어가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역사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업대변인, 신중한 정치인, 일부 언론인들은 이제 경제체제를 '시장체제(market system)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더구나 명민하고 의견이 분명한 체제 옹호자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시장체제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었고 미화되었다. 이 표현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유산과 그들의 열렬하고 뛰어난 추종자들에게서 경제체제를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신약성서를 이야기할때 공의회가 복음서 저자들이라 명명한 사람들 뿐만아니라 사이비 복음서 저자들이라고 판정한 사람들것 까지 그리스도의 모든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었구나. 그 사이비 복음서 저자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려 했고, 너는 공의회 성직자들의 이성이 아니라 네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그들의 주장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지.
조승수전의원이 민노당의 자주계열을 "친북세력"이라 규정하면서 분당이라는 극한 용어를 사용한 인터뷰기사가 조선일보 1면 상단에 실려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날나리 당원으로서 민노당이 분당하던 말던 저의 관심밖입니다. 저에게 중요한것은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치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때 민주노동당은 저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당임에 분명하지만 민주노동만이 그런 정당이다라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보세력은 다종 다양하고 때론 분열하고 때론 단결하면서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정세로 보면 아마 자주파를 친북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탈당한다면 그런 좌파역시 그들의 선택이지만 민중당이 그랬던 것처럼 소멸할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둘은 같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지 별도가 되면 다른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파국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승수전의원이 "친북세력"이라고 하는 극히 "조선일보스런" 용어를 사용한점에 주목합니다. 극우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정치인들이 말이나 글을 쓸대 항상 유념해야할 것이 극우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것도 문제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정치적 동지를 비판적인 용어가 아닌 적대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조승우의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조지 레이코프가 지은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을 다시 떠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실천해야할 11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1.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데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성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합시다.
2."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우리의 경우 한나라당, 조중동등을 생각하지마라는 경구로 기억하면 될듯)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3.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통하지는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4.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해 말해야 합니다.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5. 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별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 하십시오. 개별적인 정책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7. 정책안의 결과에 숙고하십시오.
8.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9.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진보적 사고의 여섯가지 유형 즉 사회경제적, 정체성정치, 환경주의, 신민의 자유, 영적, 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 해봅시다.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형이 무엇인지- 나와 내주위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인지 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10. 수동적이 되지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항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1.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가치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켜 도리어 보수주의 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다소 길지만 한국사회의 진보주의자들도 얼마든지 새겨 들어야 하는 말들입니다.
작은 차이를 크게 부풀려 아와 비아를 나누는 버릇은 진보세력의 가장 큰 고질병입니다. 서로 기반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의 도움없이 우린 성장할 수 없습니다.(요즘 분위기론 성장이 아니라 생존할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민노당이나 통합신당이나 각자 분열보다는 단결의 구심을 찾길 바랍니다.
용어가 불러 일으키는 불쾌한 역사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경제학자, 기업대변인, 신중한 정치가, 일부 언론인들은 이제 경제체제를 '시장체제(market system)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더구나 명민하고 의견이 분명한 체제옹호론자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시장체제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어 있고, 미화되어 있다. 이 표현은 자본가권력의 불미스런 역사를 감추고 마르크스 엘겔스의 유산과 그들의 열렬하고 뛰어난 추종자들에게서 경제체제를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SO THIS IS CHRISTMAS AND WHAT HAVE YOU DONE? ANOTHER YEAR OVER, A NEW ONE JUST BEGUN.
AND SO THIS IS CHRISTMAS, I HOPE YOU HAVE FUN, THE NEAR AND THE DEAR ONE, THE OLD AND THE YOUNG.
A VERY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AND SO THIS IS CHRISTMAS FOR WEAK AND FOR STRONG, (WAR IS OVER IF YOU WANT IT,) FOR THE RICH AND THE POOR ONES, THE ROAD IS SO LONG. (WAR IS OVER NOW.)
AND SO HAPPY CHRISTMAS FOR BLACK AND FOR WHITES, (WAR IS OVER IF YOU WANT IT,) FOR THE YELLOW AND RED ONES, LET'S STOP ALL THE FIGHT. (WAR IS OVER NOW.)
A VERY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AND SO THIS IS CHRISTMAS AND WHAT HAVE WE DONE? (WAR IS OVER IF YOU WANT IT,) ANOTHER YEAR OVER, A NEW ONE JUST BEGUN. (WAR IS OVER IF YOU WANT IT,)
AND SO THIS IS CHRISTMAS, WE HOPE YOU HAVE FUN, (WAR IS OVER IF YOU WANT IT,) THE NEAR AND THE DEAR ONE, THE OLD AND THE YOUNG. (WAR IS OVER NOW.)
A VERY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LET'S HOPE IT'S A GOOD ONE WITHOUT ANY FEAR.
초등학교 6학년때로 기억난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온 (유학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수도) 시골뜨기 시절.
수업도중에 장기자랑을 했는데 한 친구가 고등학교 다니는 형한테 배웠다고 하면서 "500마일"이라는 노래는 부르는 거 였다.
그때 느낌은 참 특이했다. 단순한 리듬과 쉬운 가사(물론 휘슬과 500마일정도만 알아들었지만) 가 중독성이 매우 강한 노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사를 칠판에 적어서 이 노래를 배운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간혹 혼자 중얼거리도 했던..
그때 500마일을 부르던 그 친구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는지...
500 miles -Brothers Four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ma hone You can g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You can g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Lord I'm one, Lord I'm two, Lord I'm three, Lord I'm four Lord I'm 500 miles from my home 500 miles, 500miles, 500miles, 500miles Lord I'm fove hundred miles from my home
Not a shirt on my back, not a penny to my name Lord I can't go a-home this a-way This a-away, this a-way, this a-way, this a-way Lord I can't go a-home this a-way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hone You can g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내가 타고 있는 기차를 놓쳐버린다면 내가 떠나 버린 거란걸 알게 되겠죠. 100마일 밖에서부터 들리는 100마일 밖에서 부터 들리는, 거기서부터 들리는 휘파람 소리도 들을수 있을꺼예요.거기서부터 들리는 휘파람 소리도 드을 수 있을 꺼예요. 아, 나는 100마일, 200마일, 300,400마일, 난 집에서 500마일 떨어진 곳에 와 있어요. 500 마일, 500마일.난 집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와 있는 거예요. 입을 셔츠 한 장 없고, 십원짜리 하나도 없어요. 이제 나는 집에 돌아갈수도 없어요. 이 먼길을 따라, 이 길을 따라, 이렇게 먼길을 따라, 이런식으로는 , 난 집에 갈 수 없어요. 내가 탄 기차를 놓쳐 버린다면, 당신은 내가 떠났다는 걸 알 수 있겠죠. 100마일 밖에서도 들리는 휘파람 소리가 들릴 꺼에요.
디비디와 인터넷이 발달한 작금의 현실은 시네필에게는 천국입니다. 90년대초 문화학교서울등 소규모 시네마테크등에서 구린 비디오화면과 조잡한 스크립터로 보던 영화들을 뛰어난 화질로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보고싶어도 보지 못하던 영화들이 수두룩했지요. 영화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수많은 영화들이 텍스트에서만 존재하지 실재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이젠 르미에르, 그리피스,에이젠쉬타인, 트뤼포등 원하는 영화면 언제 어디서든지 구해서 볼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0년전만해도 거실에 채플린전집과 큐브릭의 전집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매주토요일 가족이랑 프로젝트로 옛 영화를 보는 재미가 기막힙니다. 특히 어릴때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를 다시보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 '사랑은 비를타고''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등등. 세대를 뛰어넘는 걸작들이죠. 요즘은 '키즈' '써커스'등 채플린을 다시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제가 찾아 헤메던 영화가 바로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들입니다. 중학교 시절 고정영일씨의 해설로 시작된 어렴픗한 기억속에 영화입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법정드라마입니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12명은 미국법정의 배심원 숫자입니다. 빈민가 출신의 미천한 소년이 자신을 폭행해왔던 양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고, 확실할 것은 증거도 있고 목격자도 있고 변호사도 그의 무죄변호를 포기한 누구나 그의 유죄를 의심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외롭게 의문을 품었던 단 한사람의 설득으로 상황이 반전되어 간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1957년작으로 흑백의 단조로운 화면과 편집기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가 배심원실을 떠난 적도 없고, 판사도 피고인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오직 대사로만 영화의 긴장도를 유지합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할틈도 주지 않고 영화는 질주해 나갑니다. 대단하죠.
이 영화속의 12명의 인간군상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도,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물과 사건을 쉽게 예단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말입니다. 군중심리, 계급적 차별의식, 중산층의 나태한 사고, 어릴적 아버지와의 갈등때문에 오디푸스컴플렉스의 늪에 빠져 교통을 겪는 남성들이 나타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빨리 결론을 내리려는 사람, 특정지역, 특정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사람의 모양새를 단정하는 사람, 논증보다는 목소리 큰것으로 제압하려는 사람,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다수의견에 묻어가려는 사람, 논쟁상대에 대한 편견으로 상대의 말이라면 무조건 힐난으로 일관하고 반대하는 사람, 소수의견에 용기를 주려고 격려하는 사람, 합리적이지만 논쟁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사람등등 이 영화속의 배심원들을 보면 각자의 모습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조금씩 보게됩니다.
만들어진지 정확히 50년전의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지금도 강렬한 힘을 발휘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보시면 엄지손가락 두개를 치켜 세울 것입니다. 신의 축복으로 디비디로 출시되어 있습니다.
지난 2003년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총리의 80회 생일축하 공연에 참석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당시 이스라엘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10대 가수 Liel (리엘), 또 유태인 어린이 40명, 아랍 어린이 40명과 함께 ‘Imagine’을 부르는 동영상인데...
감동적인 장면이군요. 클린턴이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해줄만 하죠.
이매진(imagine)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은 없어"라고 해봐요 It's easy if you try, 해보면 쉬운 일이죠 No hell below us, 지옥 또한 없다고 Above us only sky, 오직 푸른 저 하늘만 Imagine all the people 이 모든 사람들이 living for today. 오늘을 위해 사는 세상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경은 없다고 해봐요 It isnt hard to do, 어렵지도 않아요 Nothing to kill or die for, 서로 죽일 일도 없고 No religion too, 종교 역시 없는 세상 Imagine all the people 이 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 평화스럽게 살아 가는
후렴)
You may say Im a dreamer, 꿈만 꾼다고 하겠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 혼자만의 꿈은 아니죠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간 당신도 함께 하겠죠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하나되는 세상을
Imagine no possesions, 내것이 없다고 해봐요 I wonder if you can, 할 수 있을거예요 No need for greed or hunger, 탐욕과 궁핍도 없고 A brotherhood of man, 인류애만 넘치는 imane all the people 이 모든 사람들이 Sharing all the world... 그런 세상을 나누어가죠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어려워 이외수의 글로 대신.. __________________________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도덕성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돈만 잘벌어 온다면 도둑질을 하건 오입질을 하건 아무 상관이 없으시다는 건가요. 도인들도 못 따라갈 경지입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조용히 있고 싶지만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워서 자꾸 자판을 두드리게 됩니다.
It's nine o'clock on a Saturday The regular crowd shuffles in There's an old man sitting next to me Making love to his tonic and gin
He says, "Son can you play me a memory I'm not really sure how it goes But it's sad and it's sweet And I knew it complete When I wore a younger man's clothes"
La la la, le le la La la, le le la la la
Sing us a song you're the piano man Sing us a song tonight Well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And you've got us feeling alright
Now John at the bar is a friend of mine He gets me my drinks for free And he's quick with a joke or to light up your smoke But there's someplace that he'd rather be
He says, "Bill, I believe this is killing me" As a smile ran away from his face "Well, I'm sure that I could be a movie star If I could get out of this place"
Oh, la la la, de de da La la, le le la da da
Now Paul is a real estate novelist Who never had time for a wife And he's talking with Davy, who's still in the Navy And probably will be for life
And the waitress is practicing politics As the businessmen slowly get stoned Yes they're sharing a drink they call loneliness But it's better than drinking alone
La la la, le le la La la, le le la la la
Sing us a song you're the piano man Sing us a song tonight Well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And you've got us feeling alright
It's a pretty good crowd for a Saturday And the manager gives me a smile 'Cause he knows that it's me they've been coming to see To forget about life for a while
And the piano sounds like a carnival And the microphone smells like a beer And they sit at the bar and put bread in my jar And say "Man, what are you doing here?"
Sing us a song you're the piano man Sing us a song tonight Well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And you've got us feeling alright
E.L.O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명곡 고등학교때 라디오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지금 들어보면 유럽팝의 고전처럼 느껴집니다.
Electric Light Orchestra-Last Train To London
It was 9-29 9-29 back street big city The sun was going' down There was music all around It felt so right. It was one of those nights One of those nights when you feel the world stop turnin' You were standing there There was music in the air I should have been away, But I knew I'd have to stay 대도시의 뒷골목 9-29번가, 해가 기울고 온누리에 음악이 울려퍼지니 내기분은 즐거움으로 가득하지요 바로 그런 밤들중의 하나였어요 저쪽에 당신이 서있는 모습이 보이자 세상이 갑자기 멈추어 버린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음악은 대기속에 가득했습니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된다고 중얼거렸지만 결국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 * Last train to London, just headin' out Last train to London, just leavin' town But I really want tonight to last forever I really wanna be with you Let the music play on down the line tonight 머리를 쳐들고 출발을 알리는 런던행 마지막 열차 마을을 뒤로 하고 출발하는 런던행 마지막 열차 영원속으로 오늘밤이 묻혀버리길 바랬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래요 밤이 새도록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It was one of those nights One of those nights when you feel the fire is burnin' Everybody was there Everybody to share It felt so right 바로 그런밤들중의 하나였습니다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어울리고 있었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보였습니다
There you were on your own Lookin' like you were the only one around I had to be with you Nothin' else that I could do I should have been away But I knew I'd have to say 그런데 당신은 외톨이가 되어 서있었습니다 마치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당신곁에는 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에게 함께 있겠다고 말했지요 아무런 생각도 못한채...
Underneath a starry sky, Time was still but hours Must really have rushed by, I didn't realize But love was in your eyes I really should have Gone, but love went on and on... 하늘에 별들만이 반짝이는 시간 아무런 생각도 못한채... 하지만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떠나야 되지만...
고등학교때 밤늦게 공부하면서 들었던 대표적인 노래죠. 새삼스럽네요. 다시 이 음악을 꺼내 들으니..
midnight blue - ELO(Electric Light Orchestra)
I see the lonely road that leads so far away. I see the distant lights that left behind the day. But what I see is so much more than I can say.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I see you crying now you've found a lot of pain. And what you're searchin' for can never be the same. But what's the difference 'cause they say what's in a name.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I will love you tonight and I will stay by your side. Loving you, I'm feeling midnight blue.
I see you standing there far out along the way. I want to touch you but the night becomes the day. I count the words that I am never gonna say.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I will love you tonight and I will stay by your side. Loving you, I'm feeling midnight blue.
Can't you feel the love that I'm offering you? Can't you see how it's meant to be? Can't you hear the words that I'm saying to you? Can't you believe like I believe? It's only one and one it's true, still I see you in midnight blue.
I see beautiful days and I feel beautiful ways of loving you, Everything's in midnight blue.
I will love you tonight and I will stay by your side. Loving you, I'm feeling midnight blue.
I will love you tonight and I will stay by your side. Loving you, I'm feeling midnight blue.
헨델이 2주만에 완성한 Rinaldo는 1711년,헤임 마키트에 있는 런던의 대표적인 가극장 "퀸즈"(뒷날의 킹즈)극장에서 초연되,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작품 못지 않게 카스트라토 니콜로 그리말디의 가창, 헨델의 쳄발로 즉흥 연주가 한몫을 단단히했다고 합니다. Lascia ch"io pianga"는 헨델의 `리날도" 2막에서 여주인공 알미레나에 의해 불려지는 아리아로 십자군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웅 리날도와 상관의 딸 알미레나와 적군의 여왕 아르미다가 삼각관계로 어우러집니다. 산의 요새에서 아르미다의 포로가 된 알미레나가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풀려 나기를 기원하는 비탄의 노래입니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Lascia ch'io pianga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Il duol infranga queste ritorte di' miei martiri sol per pieta, di'miei martiri sol per pieta.Lascia ch'io pianga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Lascia ch'io pianga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이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
오늘 아시는 분이 화랑도이야기를 하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전에 썼던 글을 옮겨봅니다. -----------------
오마이뉴스에 황산벌영화가 뜨면서 관창과 파병문제를 연관지은 기사에 대한 것을 읽고, 화랑은 태권도가 허구의 가상이듯이 화랑역시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허구의 역사라며 반박하면서 인용한 글입니다.
재미있을 거에요.
신복룡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 (2)화랑과 상무정신
[동아일보] 2001-04-07 (특집) 기획.연재 15면 05판 3469자
학자는 정직해야 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갈릴레오 이래 많은 학자들은 할 말을 못하고, 안 할 말을 해야 하는 일을 수없이 많이 겪었다. 역사학도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예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청년 문화’라고 칭송받는 신라시대 화랑(花郞)에 대한 해석이다. 기존 한국사에서 평가되는 화랑의 모습은 호국의 꽃이었고, 청년 문화에 대한 찬사의 극치였다.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화랑이 그토록 극찬을 받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역사학자는 1920년대 단재 신채호(申采浩)였다. 이어 1930년대 일제 치하 일본 역사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화랑을 거론할 때만 해도 그렇게 찬란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저 화랑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청년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이었으며 나중에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역사학자 이선근(李瑄根) 대령에게 한국사에서 청년 문화의 유산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명칭 바뀐후에도 계속 여자▼ 이에 따라 이 대령이 ‘화랑도연구’(1954)를 출판했을 때 화랑은 하루 아침에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청년 문화의 유산으로 부상했다. 그의 주장을 빌리면 이충무공(李忠武公), 개화파, 독립협회, 동학혁명, 3·1운동이 온통 화랑 정신을 빛낸 사람들이나 사건들이었다는 것이다. 화랑의 본래 모습이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화랑이 당초 여자였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최초의 화랑은 원화(源花)라고 불렸으며, 그들이 하는 일은 추석때 서라벌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패를 갈라 길쌈내기를 하던, 이를테면 부락 축제의 리더 역할이었다. 처음 원화가 된 사람은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라는 두 명의 여자였다. 그러던 것이 부락제가 국가적 행사로 자리를 잡고 규모도 확대됨에 따라 원화는 화랑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화가 화랑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화랑은 여자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1’을 보자. 이것은 ‘삼국유사’ 원본 중에서 화랑에 관한 부분을 복사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화랑이 ‘花郞’이 아니라 ‘花娘’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번째의 열쇠가 된다. ‘꽃 같은 여자’라는 말은 있어도 ‘꽃 같은 남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화랑은 ‘花娘’이라고 쓰는 것이 옳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화랑을 ‘花郞’이라고 표기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삼국유사’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헌을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라나 고려 시대 사람들은 ‘花娘’을 어떻게 발음했을까? 우선 ‘사진 2’를 보자. 이 책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후 한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동국정운’(東國正韻·국보 142호)으로 여기에는 ‘娘’을 ‘냥’이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최고의 어문학자였던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사진3)와 조선조 후기 음운학자 정윤용(鄭允容)의 ‘자류주석’(字類註釋·사진4)에도 ‘娘’은 ‘냥’으로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花娘은 어떻게 발음되었을까? 신라의 이두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까지도 그것은 ‘화냥’이었다. ‘화랑’이 아니라 ‘화냥’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얘기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현대 어문학의 태두인 양주동(梁柱東)은 필생의 저작인 ‘조선고가(古歌)연구’(1954)를 발간한 후 “내가 죽은 후 1세기 안에는 이 책의 일점일획도 고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국보(國寶)라고 칭했다. 그는 이 책에서 화랑을 언급하면서 ‘화랑이 한때 타락해 화냥의 칭호를 들었다’(372∼374쪽)고 기록했고 이선근도 그렇게 풀이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화랑은 당초부터 화냥이었지 화랑이 타락해 화냥이 된 것이 아니다. 그후 삼국 중에서 신라에만 특유하게 존재하던 모계 중심 사회가 점차 퇴조를 보이면서 화랑도 남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때는 이름도 국선(國仙)으로 불렸으며 그 최초의 인물이 설원랑(薛原郞)이었다. 화랑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무(尙武)정신과 같은 남성 문화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화랑의 선발 기준은 여전히 ‘얼굴이 고운 남자’(삼국사기 진흥왕 37년조)였다. 화랑이 진정 무사도였다면 왜 우람한 남자를 뽑지 않고 얼굴이 고운 남자를 뽑았을까? 그것은 모계 사회의 풍습 때문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던 모계 중심의 부족 사회에서의 여왕은 부락장인 동시에 제주(祭主:무당)였고 의녀(醫女)였다. 따라서 신라의 여왕은 이미 그의 주신(主神)에게 출가한 몸이므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왕이 혼자 잠자리에 들 수는 없었고, 그 얼굴 고운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했다. 신라의 여왕들, 특히 진성여왕과 그 얼굴 고운 남자들 사이에 벌어진 진한 에로티시즘에 관한 얘기는 ‘삼국사기’ 진성여왕편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위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화랑을 다루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의 어디를 봐도 화랑과 세속오계를 관련지어 설명한 곳이 없다. 미시나 아키히데의 저서 ‘신라 화랑의 연구’에는 세속오계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세속오계란 화랑과 무관한 서민 청년들의 생활 규범이었다. 세속오계가 화랑의 계율이었다는 것은 이선근의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였을 뿐이다.
▼고려시대땐 '병역 면제'▼ 내가 화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신라 후기가 되면서 화랑이 국선으로 변하고 다시 고려조에 들어오면 국선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주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였다. 그것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당시는 남자들이 이리저리 군대에서 빠지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부친이 사망한 부선망(父先亡) 4대 독자로 현역에 복무한 나로서는 병역 면제자 ‘화랑’을 상무 정신의 화신처럼 설명하고 있는 한국 역사학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조선조에서 화랑은 엉뚱한 뜻으로 사용됐다. 다시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나오는 ‘사진5’를 보자.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격(覡)이라는 글자는 오늘날 박수무당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화랑’이라고 풀이했다는 것은 그 당시에 박수무당을 화랑이라고 불렀음을 의미한다. 같은 무당이라고 하더라도 박수(白手)무당은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한량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파생됐다. 망국의 비분강개함을 느끼며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화랑의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신채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나가게 하기 위해 화랑을 무사도로 미화한 이선근의 논리는 분명 ‘빗나간 애국심’이었다. 차라리 고구려의 당나라에 대한 끈질긴 항쟁에서 청년의 기백을 찾는 것이 더 온당한 필법이었다. 건국대 교수(정치외교사)
totquf
아주 흥미있는 글이네요. 화랑에 대해서는 간간히 글을 보았는데, 역사적 맥락을 짚어 설명한 글을 보게 되었군요.
이데올로기적인 필요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의도한 목적에 맞게 조작된 대표적인 사례로 읽히는군요.
군대에서 명령에 따라 선전,선무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정훈장교가 한 일이니 오죽 잘했을까요.
2003/10/25
홍춘택
관창과 화랑은 어떤 관계? 관창이 사실은 여자?
2003/10/25
icarus
화랑이 성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 제도권 밖의 매춘부를 '유녀 (遊女)' 와 '화랑 (花郎)' 이라고 부른 것에도 알 수 있습니다. 화냥년의 어원이 고려시대 포로끌려가서 돌아왔다는 還鄕女(환향녀)에서 유래한다고 배웠지만 실은 호랑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화랑이 화냥으로 읽혔으니까요. 그리고 화랑이라는 말이 매춘부를 가르켰기 때문입니다.
화랑은 남자죠. 전쟁터와 같이 '신성한곳'은 여성이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의 성적욕구불만해소를 위해 여자들을 대리고 다니기 보다는 정복지의 여성이나 얼굴이 예쁘게 생긴 남성들을 대리고 다닌 것은 로마군을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군대들에게서 상당부분 공통으로 발견됩니다.
관창역시 그러지 않았을까요? 로마시대 유명한 장군이들이 대부분 그들 미소년출신이듯이 그들은 결코 신분적으로 낮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화랑역시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요?
매춘부는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 때도 존재했다. 그중 기녀 (妓女) 는 이를테면 '제도권내의 매춘부' 였으며, 제도권 밖에는 '유녀 (遊女)' 와 '화랑 (花郎)' 이라고 불리는 매춘녀들이 있었다.
2003/10/26
icarus
신복룡씨가 지은 "한국사 새로 보기(풀빛)"을 꼭 사서 읽어보세요.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한국인은 단일 혈통이 아니다' '화랑은 모계 사회의 궁남宮男들이었다' '의자왕義慈王과 3천 궁녀의 허구' '빗나간 신라중심사와 약소 민족의 논리'등이 재미있게 쓰여 있습니다. 실증적인 기법에서 기존 학설을 비판하는 그의 글은 무척 도전적이고 일격에 타인 제압하는 날카로운 劍과가 같은 글들입니다. 직접사서 읽어 보세요.
2003/10/26
icarus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박정희가 죽은 날이군요.
박통때 기억으로는 국가대표 축구팀을 1팀 2팀으로 나누었는데 1팀의 이름은 '화랑' 2팀은 '충무'였지요.
화랑도의 한자어도 원래 삼국유사에는 花娘徒로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가 배운 국사책에는 花郞道로 되어 있었지요. 세속오계를 들먹이며 '무리'나 '떼'를 의미하는 도가 근엄한 단어로 변신한 것이지요.
지금까지 본 수많은 영화중의 결혼식 장면중에 가장 성스럽게 묘사한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지붕위에 바이올린중 큰딸의 결혼식장면 입니다.
특히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면서 느낀 인생의 회한을 담은 가사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저같은 40대에겐 특별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Sunrise Sunset
Is this the little girl I carried? Is this the little boy at play? I don't remember growing older. When did they? When did she get to be a beauty? When did he grow to be so tall? Wasn't it yesterday when they were small?
이 처녀가 내가 안고 다니던 바로 그 작은 소녀인가? 이 청년이 놀이에 열중하던 그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던가? 나는 나이먹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언제 저들은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그 작은 소녀는 언제 저렇게 미인이 되었지? 그 남자아이는 언제 그렇게 키가 커졌나? 그들이 작고 귀여운 꼬마들이었던 시절은 이제 지나버린 시절이었던가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ow the days. Seedlings turn overnight to sunflowers, Blossoming even as we gaze. Sunrise, sunset. Sunrise, sunset. Swiftly fly the years. One season following another, Laden with happiness and tears.
해가뜨고, 해가지고, 해가뜨고, 해가지고 세월은 화살 처럼 흘러가고 있는거야 어린 나무는 밤 사이에 꽃으로 피어나고 우리가 보고 있을때도 피어나고 있구나 해는 뜨고 해는 지고,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네. 한 계절은 또 다른 계절로 바뀌어 가네 행복과 슬픔의 눈물을 실은 채로.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 By Edith Piaf (1960)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Avec me souvenirs J’ai allumé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é les amours, Avec leurs trémolos, Balayés pour toujours Je repars à zé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영역 가사) No, nothing at all, I regret nothing at all Not the good, nor the bad. It is all the same. No, nothing at all, I have no regrets about anything. It is paid, wiped away, forgotten. I am not concerned with the past, with my memories. I set fire to my pains and pleasures, I don’t need them anymore. I have wiped away my loves, and my troubles. Swept them all away. I am starting again from zero.
아니요, 전혀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다 마찬가지예요, 아니요, 전혀요, 어떤 일도 난 후회하지 않아요, 대가를 치렀어요, 흘러간 일이예요, 잊혀진 걸요, 지난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요, 내 추억에 대해서도요, 내 고통의 기억, 또 즐거움의 기억에 불을 놓았어요, 그 어느 것도 이젠 필요치 않으니까요, 내 사랑들을 흘러 보냈어요, 고통들도요, 모두 다 쓸어냈어요, 나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No, nothing at all, I have no regrets Because from today, my life, my happiness, everything, Starts with you!
아니요, 전혀요, 후회하지 않아요, 오늘 이후로 나의 인생, 행복, 모두 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니까요,
원스(Once)를 보았습니다. 상당히 잘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두주인공이 우연히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진행되어 가는 이야기를 오버하지 않고 잘 끌고가는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물론 음악의 힘도 있겠지만 스토리라인이 흩트러지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와 비슷한 영화로 밀회Brief Encounter (1946) 라는 작품을 들수 있습니다. 가정을 가진 두남녀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도 원스와 이야기가 일맥상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