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어중간히 먹으면 잠이 안오는 희안한 버릇이 있었다. 한잔 덜 마시거나 더 마셨더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이미 술을 한잔 더 마시기엔 늦어버렸고 잠을 못이루는 것은 고스란히 나 홀로 안고 가야할 고통이 되어버린 그런 밤을....
지난주 금요일 후배들이랑 기분좋게 한잔 마시고 집에 왔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이 벌어져다.
잠이 안온다. 잠이 안온다 잠이 안온다.
술 기운때문인지 머릿속은 수많은 날카로운 침들이 들쑤시면서 괴롭히고, 방광은 항이뇨호르몬을 억제하는 알콜 덕에 부지런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세상의 모든 소음들은 나에 귓속에 굉음처럼 들려왔다.
잠이 안오니 영화나 한편보자 하며 선택한 영화가 바로 알 파치노 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썸니아(insomnia)이다. 인셉션을 인상깊게 본 후라서 놀란감독의 전작을 감상하기 위해서 미리 아이패드용으로 인코딩해놓은 영화인데 때마침 잘되었다 싶어서였다.
영화만큼 좋은 불면의 밤의 파트너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영화는 알라스카의 조그마한 마을에 여고생이 살해된후 나체로 쓰레기장에서 발견되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LA경찰 윌 도머형사(알 파치노)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곳은 백야현상(Midnight Sun)이 계속되는 곳이다. 창문을 아무리 막아도 스며오는 빛을 막을 수 가 없는.
실은 그는 경찰내사과에서 증거조작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고, 그의 파트너 헵은 그에게 불리한 중요한 증언을 앞두고 있었다. 범인을 쫓는 중에 그의 파트너를 실수로 죽이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그는 알고 있었다. 모두 자기가 일부러 살해했다고 의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총을 숨기고 증거를 조작하게 된다. 여고생의 살해범을 그 현장을 목격했고 그에게 협상을 제기하게 되는데...
" 잠을 못이루면 세상에서 나홀로 버려진 느낌이 든다. "
알 파치노는 모두들 잠든밤에 잠을 못이루면서 독백처럼 위 대사를 말한다. 나홀로 눈뜨고 있고 이성이 숨쉬고 있는데 버련진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불면증이다. 차라리 죽음 더욱 더 그리워지게 하는..
결국 그날밤 나는 영화를 다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잠도 자지 못했다. 잠 못이루는 주인공의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시간이나 잠을 잤을려나....
다음날 잠 못잔 후유증이 만만치 않게 왔다. 회사일이 엉망일보직전이었고, 말은 횡성수설, 손가락하나 움직이는 것도 천근 돌덩이를 움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할일은 해야지 하고 사진강좌에 다녀왔고,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일일주점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일도 약간 거들었다. 잠을 더 잘이루기 위해서...
11시쯤 집에 들어와서 샤워도 하고 간단하게 TV도 시청하고.. 12시쯤 잠자리에 들어섰다.
오 마이갓!!!! 잠이 또 오지 않는 것 이다.
스틸녹스 1알, 지르텍 1알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점점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져갔다. 도머형사는 점점 자신이 실수로 동료를 죽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되고, 여고생살인범은 그런의 그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 든다.
자낙스 1알
급기야 그와 거래를 하는데 살해범은 그에게 자기를 무죄로 해주면, 자기도 목격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스틸녹스 1알, 지르텍 1알
여고생살해범도 "자기는 죽일 의도가 없었다. 당신처럼 그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었다. 나도 당신처럼 며칠밤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라면서 도머형사의 약점을 파고 들어 그의 판단력을 무너트려 버린다.
영화는 범인을 쫓는 도중에 그를 죽이고 총에 맞고 죽어가면서 자신의 사건을 조사하던 엘리 버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죽음이라는 깨지않은 잠에 빠져 든다.
잠이 오는군... 잠좀 자게 해주겠나?
이 영화는 보면서 놀란 감독은 꿈, 무의식, 기억등의 주제에 집착하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했다. 인셉션과 달리 잠 못드는 자들을 내세워서 깊은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도덕성, 본능등을 들추어내고 관객들을 혼동속에 빠트려버린다. 이 영화는 그의 다른 영화달리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 범인은 영화 중반에 쉽게 들어난다.
그를 잠 못들게 하는 것은 백야현상때문이 아니다. 깊은 원죄와 같은 본능에 있다. 그가 6일 낮밤을 자지 못한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이 이 세상을 6일 낮 밤으로 만들고 마지막날 쉬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의 단편 데뷔작 두들버그, 장편 데뷔작인 흑백영화 미행, 시간과 기억을 역행하는 메멘토, 잠못드는 불면의 영화 인썸니아, 배트맨의 새로운 역사 배트맨비긴즈와 다크나이트, 꿈 여행을 그린 인셉션. 내가 본 그의 영화들이다. 이제 마술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레스티지만 보면 그의 영화를 모두 보게된다. 일정한 주제를 다양한 스타일로 풀어내는 놀란의 재능이 부럽다.
영화를 다 보았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이미 시계는 2시를 넘어섰다. 충분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술도 어느정도 마셨는데... ㅠㅠ
나는 그전날부터 잠을 못 잤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의 고통처럼 피로와 덮쳐와서 이대로 두어서는 나의 뇌혈관이 터지고, 심장이 멈추어설 것 같아서 먹었던 수면제였는데... 살기위해서 먹었던 수면제였는데...
임계점에 다다르다고 느꼈을때 한발 물러나거나 한발 앞으로 나가거나.. 나는 한걸음 더 나갔다. 이제 자기 위해서는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틸녹스 1알, 자낙스 1알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아.. 모두 괜찮을거야...
나는 다시 도머형사와 달리 다음날 오후 2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라면을 간단하게 끓여먹고 다시 잠들었다. 잠을 평생 못자본 사람처럼 그렇게 잠이 들었다.
이번 주말 의약품지원본부에서는 후원금을 모집하기위해서 일일주점을 개최하는데요. 제가 티켓판매의 일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티켓판매를 의뢰하던 차였죠. 솔직히 제 할당량은 모두 팔았지만 그래도 후원하고 싶은데 후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강남에서 성공한 지인이고 20억이 넘는 유명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분이죠.
지난주에 기부를 부탁하는 전화를 할때 휴가중이라고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하더군요. 속으론 이 분이 기부를 하기 싫어하구나 하고 생각을 했더랬죠.
그런데 오늘 아침 그래도 내가 전화목소리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결정적인 실수였죠.
기분이 꿀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그가 생각하는 가치가 있고 나하고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자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화예절은 논외로 하고)
지난 화요일 번개모임을 가졌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다들 저녁은 굶었지만 술은 굶을 수 가 없어서...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마음을 달래려고 급하게 슬픈 육신에 술을 털어 넣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변진옥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린 왜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투나"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의 말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 어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아침부터 전해오는 비극적인 소식은 모든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를 지지했건 혐오했건 관계없이 심리적인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아노미상태의 충격이 가라앉자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진옥이도 마찬가지로 너무 슬퍼했답니다. 이렇게 충격적이고 슬플때 누구나 자기가 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그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건약의 게시판은 휑~~해서 나의 슬픔이 이상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난 이렇게 슬프고 아픈데 왜 사람들은 나만큼 아파하지 않을까? 하고 원망과 회한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좌파가 아닌 것 같다'라고 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게시판을 보면 간혹 정말 이념의 냉혹함을 느끼고 좌파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 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좌파가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중권의 말대로 세상 모든일을 '이념'으로만 재단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말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둬야지요.
하지만 한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왜 당신은 나름대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나요? 그것은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 권력자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고쳐지지 않는 슬픔때문일 것입니다. 이념은 이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의 일부에 불과한지도 모르지요.
슬픔은 인간의 감정중에서 가장 미묘한 감정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슬픈 마음이나 느낌'이라며 자신의 말을 자신의 뜻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설명하긴 어렵지만 누구나 느끼고 알고 있는 감정입니다. 기쁨이나 분노와는 달리 슬픔 만큼 깊은 공명을 일으키는 감정은 없습니다. 기쁨이나 분노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반대의 감정을 주지만 슬픔은 적들마저도 동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슬픔은 희노락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삶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일요일 단합대회가 있을때 하성주선배는 끊은지 30년된 담배를 한대 피우겠다면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슬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린 이런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을까요? 왜 진옥이는 건약게시판에서 그런 슬픔을 나누지 못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두가지 이유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노무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무현은 우리에겐 애증의 관계죠. 누구보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고 그의 진정성을 믿고 좋아하는 정치인기도 했지만, 아프칸 파병, 한미FTA등 우리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의 실행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그의 집권기간이 계속되면서 여기 저기에서 '난 노무현을 버렸다'는 자기 고백이 끊임없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무현이 이명박정부의 끊임없는 망신주기와 옥죄기에 못이겨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깨닫게 되죠. 여기 저기에서 사랑고백이 이어집니다. "나 노무현을 좋아했다'라고요. 이렇게 애정과 증오가 범벅이 되는 노무현 코드는 우리들로 하여금 쉽게 슬픔을 슬프다고 나누게 하지 못한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건약 게시판이 희노애락을 나누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죠. 익명성이 보장되는 커뮤니티에서는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만 이 게시판에서는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나 슬프다'라고 글을 쓰기에는 그간 건약게시판이 활성화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일상을 나누는 게시판으로도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곳이 회원들의 희노애락이 녹아나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이제 그는 실체가 아닌 전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슬픔도 가라 앉을 것 입니다. 이런 슬픔이 지속되면 우리들은 삶을 계속하기 어렵겠죠. 이런 감정이 지워지고 엷어 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 자체를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같이 슬픔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슬픔을 같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When somebody leaves you, that's the time to cry When you know you're lonely, you're not the one and only Who will cry? When your heart is broken, that's the time to cry When you know she's left you, you'll know that she has left you So you can cry Happiness is what I long for Loneliness is why I cry
For you have made my heart a slave And now it's up to you When somebody leaves you, that's the time to cry When you know she's left you, you'll know that she has left you So you can c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