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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인문 | 2008. 4. 3. 14:10
오늘이 제주도 4.3항쟁이 벌어진지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노무현정권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여 지난 과거를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한 적이 있지요.

이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두 과거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잊혀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도 눈에 보입니다.

속칭 '제주 4·3사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위원회'는 31일 진정서를 통해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는 허위로 작성됐으므로 즉시 폐기되어야 하며, 18대 국회에서 제주 4·3특별법을 폐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제주시 봉개동 12만평에 993억원을 들여 건설한 평화공원(폭도공원) 준공식을 3일 하려하고 있다"며 이승만대통령을 악마로 묘사한 사료관을 개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4.3항쟁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이산하의 한라산입니다. 군사정권의 발악이 극에 달했던 87년봄에 '녹두서평'이라는 무크지에 실렸던 이 시는 당대의 청년들의 피를 끓게 했던 시였고, 어두운 시대의 역사를 전면으로 등장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때문에 시인은 2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김지하이후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문학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다음과는 헌사로 시작됩니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녹두서평은 이후 금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학창시절에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녹두서평'은 '전환시대의 논리'나 '맑스'만큼 저의 지성에 큰 영향을 미친 책입니다.


한라산은 서사시로서 장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원고량도 원고량이지만 장대한 서사구조를 지닌 시입니다. 서시에서 4.3의 비극을 예고하는 한반도의 정국을 담은 비장한 전주곡이 울린다면  1장 ‘정복자’ 2장 ‘폭풍전야’ 3장 ‘포문을 열다’ 4장 ‘불타는 섬’으로 이어집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 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 데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안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 날

   한 무리의 정치 깡패단이 열일곱도 안 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 날,바로 그 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허수아비의 졸개들이
   이미 죽은 시체들을 대검으로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저 건 이덕구,저 건 김운민,저 건 김병남,남진,박남해……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주간에 걸린 짐승일 뿐이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었다

   해안에서 불어 오는 모랫바람이 한라산을 미친듯이
   뒤흔들고 있었다

      이산하 장편연작 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는 “198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다. 그 80년대의 치열한 시대정신 속에서 태어난 장시 한라산 또한 잊혀져서는 안될 작품이다. 한라산 원본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침묵의 죄를 용서받는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반동의 기운이 뒤덮고 있는 한반도에서
4월 3일을 맞이하여
그날의 넋들을 생각하며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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