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온-진실은 외경속에 있다.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icon 2009/05/29 에 해당하는 글1 개
2009.05.29   우린 왜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투나


icon 우린 왜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투나
카테고리 없음 | 2009. 5. 29. 14:35

지난 화요일 번개모임을 가졌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다들 저녁은 굶었지만 술은 굶을 수 가 없어서...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마음을 달래려고 급하게  슬픈 육신에 술을 털어 넣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변진옥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린 왜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투나"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의 말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 어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아침부터 전해오는 비극적인 소식은 모든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를 지지했건 혐오했건 관계없이 심리적인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아노미상태의 충격이 가라앉자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진옥이도 마찬가지로 너무 슬퍼했답니다. 이렇게 충격적이고 슬플때 누구나 자기가 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그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건약의 게시판은 휑~~해서 나의 슬픔이 이상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난 이렇게 슬프고 아픈데 왜 사람들은 나만큼 아파하지 않을까? 하고 원망과 회한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좌파가 아닌 것 같다'라고 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게시판을 보면 간혹 정말 이념의 냉혹함을 느끼고 좌파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 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좌파가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중권의 말대로 세상 모든일을 '이념'으로만 재단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말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둬야지요.

하지만 한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왜 당신은 나름대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나요? 그것은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 권력자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고쳐지지 않는 슬픔때문일 것입니다. 이념은 이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의 일부에 불과한지도 모르지요.


슬픔은 인간의 감정중에서 가장 미묘한 감정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슬픈 마음이나 느낌'이라며 자신의 말을 자신의 뜻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설명하긴 어렵지만 누구나 느끼고 알고 있는 감정입니다. 기쁨이나 분노와는 달리 슬픔 만큼 깊은 공명을 일으키는 감정은 없습니다. 기쁨이나 분노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반대의 감정을 주지만 슬픔은 적들마저도 동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슬픔은 희노락보다 더 강렬하게 우리삶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일요일 단합대회가 있을때 하성주선배는 끊은지 30년된 담배를 한대 피우겠다면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슬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린 이런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을까요? 왜 진옥이는 건약게시판에서 그런 슬픔을 나누지 못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두가지 이유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노무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무현은 우리에겐 애증의 관계죠. 누구보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고 그의 진정성을 믿고 좋아하는 정치인기도 했지만, 아프칸 파병, 한미FTA등 우리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의 실행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그의 집권기간이 계속되면서 여기 저기에서 '난 노무현을 버렸다'는 자기 고백이 끊임없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무현이 이명박정부의 끊임없는 망신주기와 옥죄기에 못이겨서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깨닫게 되죠. 여기 저기에서 사랑고백이 이어집니다. "나 노무현을 좋아했다'라고요. 이렇게 애정과 증오가 범벅이 되는 노무현 코드는 우리들로 하여금 쉽게 슬픔을 슬프다고 나누게 하지 못한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건약 게시판이 희노애락을 나누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죠. 익명성이 보장되는 커뮤니티에서는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만 이 게시판에서는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나 슬프다'라고 글을 쓰기에는 그간 건약게시판이 활성화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일상을 나누는 게시판으로도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곳이 회원들의 희노애락이 녹아나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이제 그는 실체가 아닌 전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슬픔도 가라 앉을 것 입니다. 이런 슬픔이 지속되면 우리들은 삶을 계속하기 어렵겠죠. 이런 감정이 지워지고 엷어 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 자체를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같이 슬픔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슬픔을 같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오늘 오전 최인순선배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오늘 너무 슬퍼요"




arrow 트랙백 | 댓글



[PREV] [1] [NEXT]
관리자  |   글쓰기
BLOG main image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을 뿐이다.
분류 전체보기 (439)
정치 (6)
언론 (32)
즐거운인생 (21)
인문 (130)
보건의료 (11)
인물 (16)
영화 음악 (97)
엑스리브스 (5)
가족 (5)
그림이야기 (73)
shutter chance (16)
apocrypha (1)
축구 (0)
Total :
Today :
Yesterday :
rss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 관리자
marcion's Blog is powered by Daum / Designed by plyfl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