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리는 "This Machine Kills Fascists" (파시스트를 죽이는 머신)라는 문구를 기타에 새기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Ludlow Massacre Song by Woody Guthrie
It was early springtime when the strike was on, They drove us miners out of doors, Out from the houses that the Company owned, We moved into tents up at old Ludlow.
I was worried bad about my children, Soldiers guarding the railroad bridge, Every once in a while a bullet would fly, Kick up gravel under my feet.
We were so afraid you would kill our children, We dug us a cave that was seven foot deep, Carried our young ones and pregnant women Down inside the cave to sleep.
That very night your soldiers waited, Until all us miners were asleep, You snuck around our little tent town, Soaked our tents with your kerosene.
You struck a match and in the blaze that started, You pulled the triggers of your gatling guns, I made a run for the children but the fire wall stopped me. Thirteen children died from your guns.
I carried my blanket to a wire fence corner, Watched the fire till the blaze died down, I helped some people drag their belongings, While your bullets killed us all around.
I never will forget the look on the faces Of the men and women that awful day, When we stood around to preach their funerals, And lay the corpses of the dead away.
We told the Colorado Governor to call the President, Tell him to call off his National Guard, But the National Guard belonged to the Governor, So he didn't try so very hard.
Our women from Trinidad they hauled some potatoes, Up to Walsenburg in a little cart, They sold their potatoes and brought some guns back, And they put a gun in every hand.
The state soldiers jumped us in a wire fence corners, They did not know we had these guns, And the Red-neck Miners mowed down these troopers, You should have seen those poor boys run.
We took some cement and walled that cave up, Where you killed these thirteen children inside, I said, "God bless the Mine Workers' Union," And then I hung my head and cried.
파업이 일어난 것은 이른 봄이었지. 회사가 주인이었던 집에서 쫓겨나 우리는 옛 러들로에 세운 텐트로 이사했다네
나는 아이들이 몹시 걱정되었다네 병사들이 그 철도 다리를 지키고 있었네. 종종 총알이 날아와 내 발밑의 자갈을 맞추곤 했다네.
당신들이 우리 아이들을 죽일까 봐 너무 겁이 났지. 그래서 우리는 2미터 깊이로 굴을 팠었어. 아이들과 임신한 여자들을 그 굴안에서 재웠다네.
바로 그날 밤 병사들은 우리 광부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우리의 조그만 텐트촌으로 들어와 텐트마다 기름을 부었지.
당신들은 성냥불을 댕겼고 불이 났다네 그리고 개틀링 기관총으로 우리를 쏘댔다네 아이들을 구하려고 뛰어갔지만 이미 불이 치솟아 뛰어들 수 없었지 13명의 아이가 당신들의 총에 죽었다네.
담요를 덮어쓰고 철조망 가까이에 가서 불이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사람들은 불길 속에서 짐을 빼내는 도중에도 당신들의 총알에 쓰러졌지.
그 끔찍했던 날, 우리가 시신을 묻고 장례식을 치렀던 그 때 그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꺼야.
우리는 콜로라도 주지사에게 대통령한테 전화하라고 말했죠. 방위군을 즉각 철수시키라고. 그러나 방위군은 주지사의 것이었죠.
당연히 우리의 제안을 웃어 넘겼어요 트리니다드란 마을에서 온 몇몇 여자들이 월센버그라는 곳까지 감자 수레를 끌고 갔지요 그들은 감자를 팔아 총을 샀어요. 이제 손에 손마다 총을 들게 되었던 거죠.
주 방위군 병사가 철조망까지 와 우리에게 덤벼들었죠. 우리에게 총이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우리 네드넥 광부들은 병사들을 닥치는대로 무찔렀어요.
그들이 날 살려라며 도망치는 것을 봤어야 했는데. 우리는 시멘트를 가져다가 당신들이 아이들을 죽인 굴에 벽을 쌓았다오. 나는 말했지 " 하느님 노동조합을 축복해주세요." 그리곤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었다네
러틀러학살은 1914년 4월 20일 콜로라도 러들로의 록펠러 가문 소유의 석탄.철도회사의 파업에서 어린이와 부녀자 13명이 자본가가 고용한 민병대에 의해서 학살 당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사건의 내용은 아래에
1914년 4월20일 아침, 러들로(Ludlow). 콜로라도 민병대가 파업 중인 광부들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댔다. 사망자 17명.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다. ‘러들로 학살’을 야기한 강경 진압의 주인공은 록펠러. ‘자선가 록펠러’ 바로 그 사람이다.
광부들이 뭘 요구했길래 총질까지 당했을까. 단순하다. 노동조합 인정과 임금 10% 인상, 사측의 노동법규 준수가 핵심이었다. 광부들의 일당은 1달러68센트. 다른 곳보다 20% 이상 적었다. 그나마 임금도 현찰이 아니라 회사 소유의 상점에서만 쓸 수 있는 교환권으로 지급됐다. 사택인 오두막의 집세는 터무니 없이 비쌌다.
록펠러는 광부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잘라버렸다. 이때가 1913년 9월. 광부들은 바로 탄광은 물론 사택에서도 쫓겨나 탄광 부근에는 거대한 천막촌이 생겼다. 협상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겨울을 지나 6개월 넘게 이어진 농성이 잉태한 새봄의 희망은 총알과 함께 깨졌다.
광부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최종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관총좌가 몰래 설치되고 방화가 일어났다는 점. 기관총 난사와 불길 속에서 겁에 질려 피신하지 못한 여자 2명과 어린 아이 11명이 죽었다.
법은 공평하지 않았다. 파업참가자 400명 중 332명이 체포된 반면 사측에서는 민병대 장교 한 사람만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보수 논객들은 사측의 행위를 ‘산업평화를 위한 일격’이라며 치켜세웠다.
러들로 학살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쳐 노동조건이 다소 나아졌다. 러들로에 뿌려진 어린 생명들의 피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록펠러 1세는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늘날 록펠러는 ‘선행의 대명사’로만 기억된다.
요즘은 옛노래에 필이 꽂히네요. 아하A-Ha는 우리세대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룹이지요. 'Take on me' 라는 노래는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합니다. 절로 노래가사를 따라부르게 하는 마법같은 멜로디와 가사로 기억되고 뮤직비디오도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이용해서 당시에 커다란 시각적 충격을 주었지요.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새롭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오늘 처음들은 벨벳Velvet이라는 노래인데 가사는 너무나 아름다운데 뮤직비디오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가사내용과 뮤비내용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는 듯한..
Velvet song by A-Ha
Her skin is like velvet Her face cut from stone Her eyes when she's smiling Will never reach home But hear how she sings
Her touch would be tender Her lips would be warm But when we're together I'm always alone But hear how she sings But hear how she sings Hear how she sings
Her skin is like velvet So I went to her home Her place like a palace With things you can't own Her skin is like velvet And hear how she sings Hear how she sings...
지금 들어도 섬찍할만한 말들을 당당하게 쏟아냈던 인물입니다. 정여립만큼 역사학계에 논란이 되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는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어서 양반, 상놈, 농민, 노비, 백정, 무당, 사당패등 신분고하를 부정하며 모두가 평등한 대동세상을 꿈꾸었던 인물입니다.
고은은 만인보에서 다음과 같이 정여립을 노래합니다.
성리학 주리노선은 천지 음양 귀천 상하 계급노선입니다 그런데 좌파 주기철학 일체 만물의 평등노선입니다. 바로 이 화담 율곡 주기론을 이어 정여립은 그 것을 더 발전시켜 허균이 자유주의와는 또 달리 앞장선 천하 평등노선을 강화합니다.
워낙 성격이 강직해서 적들도 많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정여립이 살던 시절에는 서구로부터 성경등 새로운 사상들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는 이런 사상들을 앞장서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의 사상은 후에 실학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에서도 보다시피 정치적, 이념적 이단아를 기득권층에서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그는 대역죄로 몰려서 관군에 쫓기다가 아들과 함께 자결했다고 전해집니다.(물론 송강 정철일당들에게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정여립의 사망뒤에 그와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선비들이 몰살을 당하게 되는데 서인들이 동인들을 1000여명 넘게 집단살해한 기축사화라고 불리우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소위 엄격한 유교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몰살되게 되었고, 조선의 멸망을 재촉하는 중대한 시발점이 됩니다.
16세기말 개혁적 선비의 떼죽음은 결국 임진왜란 때 인재 부족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조선왕조의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선비들은 더 이상 바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조선 사회를 썩게 만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 처질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신정일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임진왜란 역시 정여립은 선구자였습니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지만 조정에서 먹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여립은 아예 스스로 대동계를 이용해서 군사조직을 훈련시켜서 왜구들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정여립같은 이의 죽음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동학난, 일제강점으로 이어지는 우리민족의 외세에 의한 시달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송강 정철이 살아남아서 그의 정치적 정적에게 대한 평가를 한 것 처럼 기술했더군요. 정여립을 '모반자'였고 '성격이 사납고 잔인했'다고 표현했으며, 대동계를 '불평객'들을 모아 군사훈련이나 시키는 조직으로 폄하하였더군요.
위키피디아 라는 속성상 정여립과 연관시켜서 특정지역을 역모의 땅이라고 폄하하고 시킨 목적을 가진 자가 올린 글처럼 보입니다.
정여립이 그의 스승 이이를 배반했다는 것은 두고두고 후세가 평가하는데, 지금 관점으로 보면 정여립이 율곡 사후에 그의 한계를 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보입니다. 이율곡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현실 참여를 했지만 원론적인 사상가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정여립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의 품에 머물러 있지 못하였겠지요.
어떤 이들은 정여립을 영국의 공화주의자 올리버 크롬웰에 비교하곤 합니다. 왕의 신권설을 부정하고 그를 처형해버리고 최초의 영연방공화국을 창설한 크롬웰의 정치적 역정과 성격은 정여립과 닮아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인민들에게 해가 되는 왕은 살해해도 된다고 주장했던 정여립은 시대를 너무 앞선 인물입니다. 그래서 단재 신체호는 그를 그가 죽고난후 300년 500년 후에나 제대로 평가될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전라북도 지역은 정도령이 나타나 세상을 구한다는 토속 설화가 살아있습니다. 그 것은 아마도 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했던 민중들이 그의 부활을 애절하게 기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여인이 붕대로 눈을 감고 있다. 스스로 감아버렸는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감겨 버렸는지 알수 없다. 아니 두가지 모두 일 수도 있다.
당장 그림만 보면 난해하지만
스페인화가 에두아르도 아로요의 작품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아로요는 1937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언론을 전공했지만 문학을 전공하기 위해서
파리로 유학을 가서 화가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서 편평하고, 만화적이며,
영화적인 양식들을 차용해서 그의 작품을 그려낸다.
저널리즘을 전공했던 것처럼 그의 현실비판능력은
그의 그림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는프랑코군사독재정권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언행과 그림으로서 파시스트들에게 대항한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시련이 닦치는데 그의 작품전시회는
정부에 의해 폐쇄되기도 했으며, 그의 조국에서 체포되어 추방되기도 한다.
위 작품은 프랑코독재가 말기에 들어서면서 광기에 휩싸일때
스페인의 처지를 드러내는 그림이다. 여인의 머리뒤로 스페인국기가 보이는 것은 독재에 눈을 감고 있는
스페인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단순하고 만화적인 구성으로 그 어떤 그림보다 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여러모로 한국 민주주의 상황과 맞물려서 연상되는 것은 나의 과민반응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RSS로 알라딘의 책정보를 받아 보고 있는데 이주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커피 품을 뻔 했습니다. 베스트셀러 목록 13위에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이라는 처세술 책인데...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놀라운데, 소개글을 보고 너무 웃겨서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20대엔 평범했고 30대엔 실패자였으며 40대에 세계 최고 경영자가 된 사람, 이건희의 자기계발 전략을 파헤친 책. 이 책은 철저한 현실감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장벽을 돌파한 경험이 있는 살아 있는 인물, 이건희를 통해 위기 극복 방법을 제시한다.
이건희가 "20대엔 평범했"다고 합니다. "평범" "평범" "평범".... 이건희가 '30대엔 실패자" "실패자" 실패자"..... 돈병철이라고 불리우는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평범한 것이라면....
이런 책이 20대에 먹혔나? 88만원세대도 이건희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환타지물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요즘 뜨는 장르가 환타지니까.
아니면 삼성가에 사서보라고 독려를 했나? 전에도 이건희자서전의 주된 독자가 삼성기업이었죠. 그래서 순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과거사가 있었죠.
삼성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건희 예찬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 찬양은 그저 애들 장난일뿐..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요. 북한에도 김정일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듯이..
북한의 김정일을 찬양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있기에 그들 왕국이 존재하듯이 삼성의 이건희를 찬양하는 떼거지들이 있기에 철옹성 왕국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어짜피 그 철옹성도 부패와 정경유착, 권력남용으로 쌓아 올린 것인 만큼 반드시 무너지는 날이 오겠죠.
저자의 이름이 '지성'이고, 출판사이름에 청렴결백의 상징 정약용을 호를 이용한 '다산라이프'라는 것도 웃기지 않아요? 마치 히틀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시오니즘을 찬양하는 책을 펴낸 것처럼..
그나저나 처세술책인지 환타지물인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ㅋㅋ
사족: 혹 책도 읽어보지 않고 비판하지 말라 하지 마세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허비하기엔 제 인생이 짧습니다.
익명의 팸플릿, 인쇄물, 책들이 인간의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수많은 위대한 문학들은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씌여졌다. 저자들은 대개 신분을 감출 것인지에 관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익명의 선택은 경제적 또는 공식적 보복의 두려움, 사회적 고립, 또는 개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한 것이었다.
이유가 어쩌했던, 문학계에서는, 시장에 진출하는 익명의 작품들의 흥미는 실명을 필요성보다 중요하다. 저자의 신분을 모른다면 더 설득력있을 수 도 있다. 또 익명성은 개인적으로 인기가 없는 저자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선입견 없이 쓰는 길을 제공한다.
유튜브코리아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는 9일부터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 영상물이나 댓글 등의 게시물을 올릴 수 없도록 하는 대신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 1일부터 인터넷 본인확인제 대상 사이트에 포함된 유튜브 한국 사이트가 정부 규제에 정면 대응해 게시판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최근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은 게시판 기능을 가진 사이트로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일 경우 본인확인제를 준수하도록 했다.
당초 구글코리아는 실명제 도입을 검토해왔으나 미국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최근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며 전 세계에서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던 구글이 한국에서만 정부 규제에 굴복해 예외를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세계 유일의 인터넷 실명제 국가, 정부비판글을 썼다고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하는 나라, 명예침해신고만으로도 네티즌 글들을 마구잡이로 가두어 버리는 국가인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인터넷 강압국의 정책을 따른 다는 것은 어찌보면 구글입장을 떠나서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글의 이번 입장표명은 당연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네티즌들에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미국의 영화를 보면 수정헌법 1조[각주:1]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래리 플린트 라는 영화가 대표적인데 허슬러의 편집자를 명예훼손 및 음란물 간행죄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플린트의 무죄를 선고합니다. 음란물 간행죄라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 다는 이유에서이지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만들수 없다."라는 것이 요지인데 근대 민주주의 정수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사회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구나가 헛점이 있게 마련이고 잘못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한다면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 사회는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이의 의견은 자신의 행위나 의견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삼은 것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들이 국가나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사상, 양심, 지식, 경험 등을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표현의 수단이 담화, 연설, 토론 같은 구두(口頭)의 형식인 경우 일반적으로 언론의 자유라 하고, 서적, 발행물, 도서와 같은 문서에 의한 표현의 형식인 경우 출판의 자유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표현을 위하여 단체를 구성하거나 집단을 통하여 행동하기도 하는 바, 이를 집회결사의 자유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각종규제를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 현재의 모습입니다. 일몰후에는 아예 집회를 할수없다는 집시법이나 실명제를 하지 않으면 의견을 게시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법, 상대방을 모욕했다는 의심만 들면 피해자의 고발없이도 사법처리 할 수 있는 사이버모욕죄등등..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본문으로]
조선일보가 오늘 대정부질문을 한 이종걸의원에 대한 서신입니다. 이름하여 보도에 참고하시랍니다.
아래는 전문 내용
수 신: 이종걸 의원 귀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로 1번지 의원회관내)
제 목: 국회내 명예훼손 행위 관련
1. 귀하는 2009.4.6.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282회 임시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통하여 “경찰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을 은폐하기 위해 명단 공개 여부를 놓고 말을 바꾸고 있는게 아니냐”며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Y모 사장을 술자리에 모시고, ... ”라면서 본사의 이름 및 사장의 성(性)을 실명으로 거론하였습니다.
2. 본사는 귀하의 위와같은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며, 본사 사장은 위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3. 면택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내에서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이며, 이로 인하여 특정인의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가하는 행위는 명백히 민형사상 위법한 행위입니다.
4. 본사는 귀하에 대하여 즉각 이와 같은 위법행위에 대하여 사과함과 동시에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줄 것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본사로서는 이와 같은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귀하에 대하여 엄중한 법적 대응을 취할 것임을 밝힙니다.
2009.4.6. 조선일보사 경영기획실장 강효상
이종걸의원이 근거없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장자연씨 문건내용을 입수하여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위법한 행위인지 조선일보는 답해야 할 것입니다.
떳떳하다면 경찰의 조사를 받으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방씨일가들에게.. 비겁하게 입막음용 협박이나 하지 말고..
2002년 미국에서 10대들이 맥도날드를 상대로 자신들을 비만으로 이끌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맥도날드가 호도성광고와 판매기법으로 뉴욕 십대 청소년들을 과식으로 유도하고 비만으로 이끈 주원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일은 소송천국 미국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으로 세계인의 눈에 띄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들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자신의 탐식과 방만의 책임을 기업한테 돌려서 돈이나 뜯어 내려는 부도덕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던 것 입니다.
즉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려는 비겁한 모습으로 보여 졌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소송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송이었습니다. 햄버거가게에서 우리는 자유의지대로 메뉴를 선택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4,500원에 감자튀김과 콜라를 추가해서 드시지 않으시겠어요?” 종업원이 이렇게 물으면, 모두들 그냥 햄버거만 달라고 하게 됩니다. 하지만 “900원만 더 내시면 감자튀김과 콜라를 함께 드실 수 있는데, 그렇게 해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아무런 의지적 고민 없이 “예! 그렇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게 됩니다.
"900원만 더 내시면 감자튀김과 콜라를 함께 드실 수 있는데, 그렇게 해 드릴까요?" 이 한마디에는 고객이 애초에 구매할 생각이 없는 품목을 충동구매하게 해서 매출을 더 늘리는 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판매기법을 슈퍼사이징이라고 부릅니다. 패스트점이나 식당등에서 세트메뉴를 만들어서 각각 살때보다 더 싸게 구입하게 함으로서 소비자가 애초에 구입할 의사가 없었던 품목까지 사도록 충동을 일으키는 판매기법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데로 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누군가 만들어논 규칙내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꼭두각시일 수 있습니다. 슈퍼사이징은 개인들이 가진 의식적인 판단력을 어지럽히려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것이며, 실제로 시장에서 잘 먹혀 들어갑니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질문의 틀이나 형식을 바꾸면 소비자들의 분석력을 약화시킬수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통해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자유시장이라는 표현은 허구라고 주장하면서 '조직되지 않은 소비는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기업측에서 광고와 마케팅등으로 소비의식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연필한자루도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우리는 이런 보이지않은 조직속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하고 소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업과 기업의 경쟁도 치열하지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조직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 사회의 법질서와 규범은 모두 각각의 개인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원리에서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법질서가 가능해진 것이지요. 신의 의지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지만 심리학, 인간행동학, 정신분석학등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맥도날드 마케팅담당자부터 정치컨설턴팅까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허약한 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헛점을 파고드는 기법들을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현재의 기득권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투표나 매출에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의 자유의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사회가 심화된다면 근대혁명역사처럼 또 다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지는 않을까요?
뉴욕의 철없는 10대들의 소송이라고 치부할 수도있는 사건에서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위기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도 호감가는 분이었는데 인터뷰기사를 읽고서 더 깊은 애정을 느낄만큼 좋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어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TV에서 본 것 보다 아담하고 날씬하다고 합니다. TV가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편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청률 때문이죠. 한국 텔레비전은 시청률에 너무 민감합니다. 외국에서도 시청률 조사하지만 그냥 참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여성은 섹시해야 하고, 연애 이야기나 야한 이야기를 끌어내려 하는 거죠. 우리도 싫어해요. 미수다 출연자들 대부분 학생이거나 선생이에요. 다들 순진합니다. 코미디언이나 배우가 아니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압력을 주는 것은 물에 놀던 물고기를 사막에 데려다 놓는 것과 비슷한 거겠죠. 방송이라면 공익적인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국 <비비시>(BBC)처럼 그런 기준이 명확해야죠.
그녀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기때문에 매우 정확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더군요. 매번 막창을 좋아한다는 방송상의 멘트도 실상은 제작진이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 2003년도 입국한 이후로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짜로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은 말들은 아래의 말입니다.
한국 청소년들은 어떤가요?
“애들을 과외하면서 느낀 건데, 아버지가 없어요. 집안에서 아버지가 갖는 교육적 위치는 커요. 허용과 금지의 기준이 뭔지, 어른들과 애정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한국 아이들에겐 아버지가 없어요. 밤에도 회사에 있죠. 그래서 아이들이 콤플렉스가 생기는 거예요. 자기가 가진 걸 못 보고 계속 밖에서 욕망을 갈구하죠. 그걸 물건과 음식으로 풀고, 집에 안 가고 거리에서 배회해요. 비만과 범죄가 늘죠. 가족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는 거죠.
서양은 그렇지 않습니까?
“서양도 1950년대까지는 일만 했어요. 남자들이 집에 안 가고, 술 마시고, 이혼율 높아지고, 결국 가정의 해체가 왔죠. 그래서 반성하고 5시에 칼퇴근을 시킨 거예요. 한국도 회식 같은 거 하면 안 돼요. 하려면 가족들 다 데리고 가야죠. 한국이 서양의 전철을 밟을지 극복하는 방향으로 갈지 갈림길에 서 있는 거죠. 늦기 전에 가정을 지키도록 한국 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 방송이 엄청 중요하죠. 엄청난 영향력이 있으니까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태어났고, 영국 런던에서 자랐으며 지금은 뉴질랜드 국적에 대구에서 살고 있으니 정말로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저녁 허겁지겁 왓치맨을 봤습니다. 남북축구 월드컵예선전이 열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제가 마지막 상영일이었거든요. 오늘부터 서울에서는 상영하는 극장이 사라졌습니다.
이 영화가 상영되기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왓치맨하면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원작의 아우라가 워낙 강렬해서 모든 이들이 만들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는데, 마침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은 원작팬들에게는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완전 엉망은 아니지만 아쉽다입니다.
감독이 너무나 원작을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한한 원작을 훼손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왓치맨의 원작 플롯 자체가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기때문에 2시간동안 모든 부분을 설명하기에는 힘들죠. 당연히 과감한 각색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 다른 그래픽노블인 300이나 씬시티등의 작품의 경우 플롯이 복잡하지 않고, 선악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영화화 할때 원작을 읽은 팬이나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모두 몰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왓치맨처럼 복잡한 플롯의 작품의 경우 관객의 몰입을 위해서 가지치기가 필수적입니다.
왓치맨 역시 원작의 두가지 플롯중에서 난파선이야기를 없애고 마스크맨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나갔지만 실상은 더 많은 가지치기를 했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아니면 과감하게 시대적 배경을 부시시대로 옮겨서 원작을 재해석 했었으면...
아무튼 영화를 못볼뻔 하다가 다행히 보았고, 원작을 다시 읽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론 만족합니다.
어두었던 과거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좋은 기억으로 변하고 아직 오지않은 미래는 점점 어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