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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무엇을 믿을 것인가?
2009.02.17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 2


icon 무엇을 믿을 것인가?
인문 | 2009. 2. 18. 13:53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관장하신다는 신앙인과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자간의 사이는 논쟁은 항상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성경을 신의 계시와 말씀으로 이해는 신앙인과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신화로 이해하는 무신론자간의 토론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보입니다. 그런 무의미한 도전을 한 두 지식인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 "무엇을 믿을 것인가"(열린책들)라는 책입니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와 차기 교황으로 유력한 마르티니추기경간의 서한형식의 질의응답식으로 묶은 이 책은 모처럼 만에 읽는 명저입니다. 100쪽 약간 넘는 얄팍한 책에서 둔직한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대화는 네가지 주제를 가지고 하게 됩니다.  대화를 하는 그들은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에코가 먼저 묻고 마르티니가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에 에코는 "철학자는 문제제기를 전문으로 하면서도 그 답을 모르고 있음에 반해, 영혼의 목자인 사제는 어떤 질문에도 정답을 가지고 있다"라는 세간의 선입관을 꼬집으면서 투정부리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카톨릭교회등 정통 보수종교단체들이 왜 여성성직자들을 거부하는지 대한 날카로운 질문에 마르티니는 요즘의 교회는 오랜 세월동안 오로지 남성에게만 사제직을 부여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거-즉, 여자는 불결하고, 사악하며, 음란한-들을 더 이상 제시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한같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구원의 사건들에 충실하려는 교회의 열망"임을 말합니다. 즉답을 피한 것이지요. 흔히 신앙인들이 논리가 궁핍하면 교회담벼락 안으로 숨어버리듯 말입니다.


이제 마르티니가 묻습니다. 비신앙인들이 "종교적 근거에 비추어 보지 않아도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확신합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도덕적인 신념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 받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이 궁극적으로 자기들의 행위에 어떻게 정당성을 부여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즉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힘은 절대자에서 나오고 비신앙인들은 그것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에코는 말합니다. 인간이 죽음까지 감수하는 이타적 행동은 신념과 도덕심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도덕성 등의 윤리의식은 타자의 존재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타자이며 타자의 시선입니다. 먹지않거나 자지않고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타자의 시선과 응답이 없으면 우리는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인하고 강간하고 모욕하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예외일때만 그런 짓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남에게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구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계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자의 구원에 대한 신념이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는 마르티니의 의문에도 이렇게 답합니다.


비신앙인은 아무도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 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는 이 세상에 자기 죄를 용서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만일 그가 악행을 저질렀다면 무한할 것이고 그의 죽음은 절망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신앙인보다 더 과감하게 죄를 고백하면서 남들의 용서를 구하고 죄를 씻으려 할 것입니다. 또한 남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남을 용서해야 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말이 바로 자신과 타자사이에 라는 뜻이듯이 우리는 타자의 존재에 의해 윤리가 '자연발생'한다는 에코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2000여년 넘게 절대자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윤리속에 갇혀있었던 서구의 지성들이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사상의 만개를 이룩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카톨릭신자인 후배가 저에게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이라는 책을 주면서 왜 우리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갈구"하는가 하면서 그것은 바로 "영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차 있는 제가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영에 대한 목마름"을 집어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식에 대한 목마른자도, 영에 대해서 목마른자도 적절하게 이끌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상세보기
움베르토 <b>에코</b>.마르티니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새로운 묵시록에 대한 세속의 강박 관념,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 으로 바꾼다, 인간의 생명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이다 등 희망과 생명, 여성에 관한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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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
인문 | 2009. 2. 17. 09:32
김수환추기경이 어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실었군요. 그가 현대사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상한 용어 하나가 신경을 거스르게 하네요.

바로 선종善終이라는 표현인데...

선종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망때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선종은 카톨릭에서 높은 지위의 성직자가 죽음을 맞이할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으로 보입니다.


선종 善終 : 가톨릭에서, 임종할 때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大罪)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이르는 말.


성직자들의 죽음을 일반신도와 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불교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고승高僧이라도 죽게되면 열반槃, 입적入寂 이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열반  :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하는 경지.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 경지.

입적 入寂 : 열반에 들다

위 용어들은 일반 신도의 죽음에서는 쓰이지 않고 보통 고승(高僧)의 죽음에서만 쓰지요. '입멸(入滅)' '귀적(歸寂)' 등도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특별한 용어가 보이지 않는 군요. 개신교는 원래 성직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전통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대형교회처럼 목사들이 예수처럼 행사하는 권력자들인 만큼 그들도 곧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 않을까요?

보통 권력자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 죽으면 보통 서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별다른 뜻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는 보통 죽었다라는 한자어 사거死去의 높힘말입니다.

서거 逝去  <사거(死去)>의 높임말.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 사망.


한자어에는 유독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이 많습니다. '별세(別世)' '운명(殞命)' '절명(絶命)' '기세(棄世)' '영서(永逝)' 임종(臨終)' '작고(作故)' 등등
이들 용어들은 죽음을 바라보는 당대의 철학을 반영하기도 하고, 신앙관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존귀한 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뜻에서 높혀 부르기 위해서 다양한 한자어들이 등장 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무릇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성이 높은 사람들의 죽음을 높혀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르지만 만약 외국언론이었다면 'Dead' 로 간략하게 표현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죽음을 다른식으로 표현해온 것은 중국문화권의 오래된 관습인데, 이것이 서양에서 유래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 문화에 전염 된 모양입니다.

사서오경중에 하나인 예기에서는  '예기(禮記)'에서는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는 졸(卒), 사는 불록(不祿), 서민은 사(死)라고 규정하였다고 합니다. 철저한 계급사회다운 발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도 용산참사처럼 일반인이 죽으면 '사망(死亡)'이고 대통령쯤 되는 위인이 죽으면 '서거(逝去)'고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타계(他界)'나 '영면(永眠)'이라는 표현으로 신분에 따른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죽었는데 신분에 따라 죽음 뜻하는 용어도 다르다는 것은 막 청동기를 벗어난 기원전이나 인터넷시대인 현대에도 한국사회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죽은 이를 높이는 것은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지만, 지위를 가지고 쓰는 말을 달리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추기경의 죽음도 선종이면 일반 카톨릭신자의 죽음도 선종이어야 합니다. 그 말뜻 그대로였는 선종이었는지는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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