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팸플릿, 인쇄물, 책들이 인간의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수많은 위대한 문학들은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씌여졌다. 저자들은 대개 신분을 감출 것인지에 관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익명의 선택은 경제적 또는 공식적 보복의 두려움, 사회적 고립, 또는 개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한 것이었다.
이유가 어쩌했던, 문학계에서는, 시장에 진출하는 익명의 작품들의 흥미는 실명을 필요성보다 중요하다. 저자의 신분을 모른다면 더 설득력있을 수 도 있다. 또 익명성은 개인적으로 인기가 없는 저자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선입견 없이 쓰는 길을 제공한다.
유튜브코리아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는 9일부터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 영상물이나 댓글 등의 게시물을 올릴 수 없도록 하는 대신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 1일부터 인터넷 본인확인제 대상 사이트에 포함된 유튜브 한국 사이트가 정부 규제에 정면 대응해 게시판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최근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은 게시판 기능을 가진 사이트로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일 경우 본인확인제를 준수하도록 했다.
당초 구글코리아는 실명제 도입을 검토해왔으나 미국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최근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며 전 세계에서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던 구글이 한국에서만 정부 규제에 굴복해 예외를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세계 유일의 인터넷 실명제 국가, 정부비판글을 썼다고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하는 나라, 명예침해신고만으로도 네티즌 글들을 마구잡이로 가두어 버리는 국가인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인터넷 강압국의 정책을 따른 다는 것은 어찌보면 구글입장을 떠나서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글의 이번 입장표명은 당연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네티즌들에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미국의 영화를 보면 수정헌법 1조[각주:1]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래리 플린트 라는 영화가 대표적인데 허슬러의 편집자를 명예훼손 및 음란물 간행죄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플린트의 무죄를 선고합니다. 음란물 간행죄라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 다는 이유에서이지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만들수 없다."라는 것이 요지인데 근대 민주주의 정수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사회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누구나가 헛점이 있게 마련이고 잘못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한다면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 사회는 더 큰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이의 의견은 자신의 행위나 의견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삼은 것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들이 국가나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사상, 양심, 지식, 경험 등을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표현의 수단이 담화, 연설, 토론 같은 구두(口頭)의 형식인 경우 일반적으로 언론의 자유라 하고, 서적, 발행물, 도서와 같은 문서에 의한 표현의 형식인 경우 출판의 자유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표현을 위하여 단체를 구성하거나 집단을 통하여 행동하기도 하는 바, 이를 집회결사의 자유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각종규제를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 현재의 모습입니다. 일몰후에는 아예 집회를 할수없다는 집시법이나 실명제를 하지 않으면 의견을 게시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법, 상대방을 모욕했다는 의심만 들면 피해자의 고발없이도 사법처리 할 수 있는 사이버모욕죄등등..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본문으로]
어제 제가 바빠서 포스팅을 하지 못했는데 저녁때 메일을 확인해보니 다음으로부터 위 사진같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제가 지난 3월16일에 포스팅한 '성상납 받은 언론사 간부는 누구? 가 조선일보에 의해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글이 아래 사진처럼 블라인드처리 되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군요.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글 어디에서도 조선일보를 직접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표현도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김용철삼성비자금사건을 언급하면서 조선일보와 경쟁관계에 있는 모언론사를 의심하는 듯한 표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장지연리스트' 언론사간부'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글을 읽어 보지도 않고 삭제요청을 한 모양입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무고'라는 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고소나 고발을 하는 것이 무고인데, 조선일보가 경찰이나 검찰에 아직 고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상으로는 무고라고 볼 수 없지만,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글을 거짓으로 꾸며서 제 글을 가두어 버렸기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무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당하면서 새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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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은 서버관리자에게 신고만 하면 언제든지 글을 접근금지 시킬수 있는 반면 명예훼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게시자입장에서는 법적인 권력기관에 호소를 해야만 자신의 글을 감옥에서 구출할 수 있다는 말인데...
제 생각으로는 먼저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오면 워닝페이퍼를 보내고, 게시자에게 블라인드 동의 여부를 물어보고 난 후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는가하고 생각해봅니다.
저의 글처럼 명예훼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글도 무작위로 감옥에 갇히는 사태를 막는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여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에 대통령에 관한 온갖 풍자와 소문들을 모두 명예훼손으로 글을 삭제한다면 민주주의는 질식해버리겠죠. 그런데 권력이라면 청와대에 버금간다는 거대 언론사가 일개 네티즌들의 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글들을 지워버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 질까요?
그나저나 저는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소위 장자연리스트에 대해서 크게 신뢰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일을 당하면서 신뢰도가 조금 상승했다는 정도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얻은 성과라면 성과군요.
스승이 학생보다 지적 능력에서 우월하다고 전제하고서, 우월한 스승이 열등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념으로는 영원히 불평등을 벗어날 수 없다. 랑시에르는 불평등을 출발점으로, 평등을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을 전복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스승과 학생 사이의 나눔·분할을 거부하고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식한 자가 지도하고 무지한 자는 지도를 받는다는 발상을 극복할 토대가 마련된다. 모르는 자가 모르는 자를 가르칠 수 있으며, 모르는 자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다. 이런 지적 능력의 평등은 기존 질서의 위계와 자리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지배의 작동 조건인 나눔과 분할의 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내가 블러그에서 쓰고 있는 정치, 예술, 언론, 문학, 인문, 종교에 관한 글들 모두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지식의 8할이상이 독학이었다.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고와 전문대 졸업이라면서, 중앙일보같은 쓰레기는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릿기사를 실었다.
학력이 낮으면 거짓이고 가짜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능력에 있다. 랑시에르는 이런 능력이 평등하게 타고났다고 말한것이다.
사실 가장 부끄러워할 집단은 바로 그들이다. 그 잘난 학벌과 권력을 갖고도, 분석·전망·대책이 얼마나 엉터리였으면, 일반 대중이 미네르바에게서 대안을 찾고자 열광했을까. 그의 못난 학벌은 오히려 그늘에 묻혀 썩어가는 인재들의 존재와, 그 잘난 학벌에 가려진 권력집단의 탐욕과 무능을 고발한 셈이다.
기자라고 하는 자들도 자신들이 무심코 뱉어내는 기사의 8할 이상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의 독학에 의해서 배웠을 것이다.
"A few months ago, I got a phone call from a senior Bank of Korea official because I expressed worries about the foreign exchange reserves in a local newspaper," an economist at a local brokerage told Reuters, asking not to be identified.
"The official said that I would be responsible for a (potential) crisis if media keep reporting negative views.."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경제학자들에게 언론에게 경제에 관련한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입니다.
아예 정부에 비판적인 언급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인데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죠. 기사 분류를 Oddly Enough 로 분류 했더군요. 기괴한 사건이라는 것이죠.
외국의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욱 더 한국상황을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지난주 토요일에 주문한 최경태의 2007년 뉴욕전시회 도록인 "CHOI"가 오늘 아침 도착했군요.
위 도록은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열린 최경태의 "PINK & HAIR : The First Feeling" 작품전에 출시된 작품들을 엮었다.
최경태는 2002년 8월 음화전시판매,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반포죄 적용받아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고, 작가의 피와 영혼인 작품 31점 압류소각당한 이 시대의 이단아이다. (작품을 소각하다니 얼마나 야만적인가? 법원에 압류된 상태로 보관되어서 후대에 다시 평가 받도록 하는 아량도 없는 한국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도록의 제목답게 여고생으로 보이는 앳된 소녀의 노출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품속의 소녀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여고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영혼에 날카롭게 메스를 들이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예술과 포르노를 편가르려는 우리들의 알량한 지성을 흔들어 논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서 외친다.
"포르노도 예술이다."
마네의 올랭피아 를 처음 본 파리지앵들의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경외감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 강추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