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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명랑한 신세대 민중작가 - 조습
그림이야기 | 2008. 4. 1. 18:28
이 시대에 누가 민중미술을 논하랴?

민중미술은 80년대 들불처럼 번지다가 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쇠퇴하였다. 민중미술의 시대적 소명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예술계에서 미학적 성취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변두리 예술에 그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반이정은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거룩한 이름의 낙인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엄혹한 80년대에는 미학적 몰취향과 정치적 예술로 폄하되었고, 시대가 바뀐 90년대와 지금은 쟁점을 상실한 채 후일담이나 늘어놓는 예비역 신세가 되어있었다. 그러니 민중미술이란 이름은 동일한 정치 사회적 비판을 공유하는 미술계의 차세대는 물론 원조에게조차 꺼림직 한 직함이 된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누구나 기피하는 이름. 바로 민중미술이 오늘 넘어설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낙인이자 정서적 장벽이다.


이런 풍토에서 민중미술을 하는 미술가가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도 어찌보면 뉴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조습은 80년대 민중미술의 성과를 계승하고 2000년이후의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낸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공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80년대 민중미술과 비교하면서  "같은 점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최소한 상식적인 선에서 벌어져야 한다는 그런 문제점을 표현하는 거구여. 틀린 점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80년대 담론이 주적개념이라고 해야 되나요. 독재라든지. 지금은 가상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느낌들, 그것마저도 규정되어 진다는 거죠. 언론. 미디어. 역사에 관련된 해석들. 그런 차이에 관한 얘기를 하는 거 자체가 과거와는 틀리다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조습은 선배세대와 달리 적들에 대해서 직격탄을 날리기보다는 풍자와 유머로 맞섭니다. 촌스럽고 조악한 설정은 군사정권과 어두운 과거에 대한 조롱으로서 전략적 채택입니다.  영화의 스틸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시리즈 사진을 통해  영화처럼 보이지만 비디오와 사진의 중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허구로 재구성하여 우리의 현재를 일깨웁니다. 얼마나 사람살만한 세상이 되었나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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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테타 (2005)

한국 현대사에 그늘을 드리운 5. 16 군사 반란을 조악한 장식의 노래방에서 재현함으로써, 군사 반란의 조악성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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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2005)

10.26을 재현한 사진에서는 그 당시 저격 사건만큼 이후 인구에 크게 회자가 된 궁정동 만찬장의 시바스 리갈을 대신하여, 작가 스스로 즐겨 마시는 ‘참이슬 리갈’이 상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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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 (2005)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밀어주며 살가운 정을 쌓는 목욕탕이 80년대에는 물고문장소로 쓰였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불연듯 깊은 무의식을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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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습이를 살려내라 2002

 2002년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1987년 민주항쟁과 결부시켜 이해한 시각이 독특합니다. 월드컵의 집단의 환호속에 개인의 희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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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2004

학생시절의 추억을 유쾌하게 회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친구에게 똥침놓고, 사창가에서 뚱뚱한 아줌마에게 동정을 바쳤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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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폭파범 김현희

여기에 등장하는 김현희역을 그의 작품전시회의 큐레이터가 맡았다고 합니다.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도 진실을 묻지도 말라던 그시절을 풍자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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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교 부흥회 2001

마지막으로 명랑교 교주로서 그의 설교를 들어보자

명랑敎란 어떤 종교인가? 명랑敎는 1999년 조습(현 명랑敎 敎主)를 주축으로 생겨난 사이비미술종교조직으로써 반공․순결․사랑․밑음을 모토로 한다. 온갖 기성종교계의 탄압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지금 한창 교세를 확장 있으며 엄청난 수의 신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 명랑敎 敎主 조습의 첫 부흥회 “난 명랑을 보았네!!“는 이러한 ‘명랑’의 은혜와 축복 그리고 기적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심각한 사회문제, 사회적 사건들은 구매력을 잃은 상품 같이 돼 버렸다. 이 구매력이 떨어지는 상품을 어떻게 하면 ‘경쟁력이 있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것이 본인의 고민이였다. 그래서 나온 표현 방법이 ‘유머’와 ‘명랑’이라는 가벼움의 미학이다. 본인은 무거운 비판적 내용을 보다 철저히, 가볍게 보이는 표현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현대사회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빨아들이며 또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미지들을 뱉어내고 있다. 바로 그 속도, 읽어 낼 수 있는 속도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시지각을 자극시켜 당장 이해 가능하면서도 헛웃음이 돌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유머적 표현의 의도이다. 이는 현대미술이 전달하는 비판적 정신과 사회적 메시지를 하나의 우스개처럼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상함과 진지함, 난해함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3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치함, 천박함, 냉소와 모독 그리고 지독한 외설은 현대미술의 신화적 권력에 대한 일종의 시위이다. 본인의 유머는 이처럼 폭력적 성격을 가진 유머로서 무엇보다 권력과 우상의 신화적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선택된 것이다. 권력과 우상이 말하는 신화의 이상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공포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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