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의 ‘빨래터’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 45억2000만원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
지난 3월 K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당시 25억원에 낙찰되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었다. 2개월 후인 2007년 5월 2일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은 박수근 화백의 미공개작 <빨래터>(1950년대)가 추정가 35억∼45억 원에 경매에 나왔다고 밝혔다.(도판1) 5월 22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제106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 미공개작 <빨래터>는 45억2000만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빨래터>가 짝퉁 의혹을 받고 있다.
박수근의 미공개작 <빨래터>를 공개적으로 검증하자!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황평우 위원장 왈, “2007년 5월 22일 서울옥션 경매날 저는 서울옥션을 찾았습니다. 당시 서울옥션 관계자 3인과 만나 박수근 미공개작 <빨래터>와 조선시대 <일월오봉도>가 위작일 가능성이 높으니 공개적으로 검증하자고 말했지요. 당시 서울옥션 이학준 상무는 저의 말을 녹음까지 했었습니다.”
당시 서울옥션은 제106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 나올 모든 작품들을 실은 도록 이외에 박수근 미공개작 <빨래터>와 <일월오봉도>만 인쇄한 일종의 특별판 도록도 만들었다. 서울옥션 측은 미공개작 <빨래터> 이외에 1995년 열화당에서 출판한 <박수근>에 실린 <빨래터>(도판2), 1999년 삼성미술관에서 발행한 <박수근> 도록에 실린 유화 <빨래터>(도판3)와 드로잉 <빨래터>(도판4)도 인쇄해 놓아 비교 가능케 했다. 서울옥션 홈페이지에는 미공개작 <빨래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해 놓았다.
“빨래터에 아낙들이 옹기종기 모여 빨래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사선 구도로 설정된 냇가로 인해 동적인 인상을 주면서 동시에 화면을 안정시키고 있다. 화사한 색상 역시 이 작품의 특성이다. 박수근 대부분의 작품이 연한 갈색 톤으로 일관되며 색채 사용에서 극도의 자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상이 드러난다. 그래서 겨우내 얼었던 냇물이 풀린 듯 화사한 봄기운이 물씬 배어나며, 다른 작품에선 느낄 수 없었던 즐거운 생동감을 선사한다. 가사 노동에 지친 여인네들의 인고가 두드러지지만, 그 인고가 처량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박수근의 미공개작 <빨래터>는 ‘예외’ 그림이다?
근데 박수근의 드로잉 <빨래터>에는 ‘1934.2.27’이라는 제작년도가 쓰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옥션 일반 도록과 특별판 도록 모두는 박수근의 드로잉 <빨래터> 제작년도를 한결같이 ‘1954년’으로 표기해 놓았다. 아마 실수로 제작년도를 오기한 것 같다. 물론 유화 그림이 드로잉을 모델삼아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34년에 그린 드로잉이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에 유화로 그려졌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그 드로잉과 유화그림을 1954년대 후반에 그려진 <빨래터>와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림의 구도가 20여년이 지났는데도 크게 다르지 않고, ‘1954년’에 그려진 <빨래터>의 강변 묘사는 ‘1950년대 후반’에 그려졌다는 <빨래터>의 강변 묘사보다 더 세련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1954년작 박수근의 <빨래터>는 연한 갈색 톤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노랑과 붉은 저고리도 등장하지만 그 노랑과 붉은 색은 백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와 마찬가지로 갈색 톤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다양한 색채들(노랑, 붉은 색, 백색, 검정)이 갈색 톤에 포섭되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미공개작 <빨래터>는 각각의 색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공개작 <빨래터>는 박수근의 다른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일종의 ‘예외(例外)의 작품’인 셈이다. 근데 그 예외의 작품을 박수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수근이 자기 몸에 익숙치 못한 그림을 그렸다?
황 위원장 왈, “저 같이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서울옥션 경매에서 낙찰된 미공개작 <빨래터>는 박수근의 <빨래터>를 어설프게 흉내낸 것임을 알 수 있지요. 특히 왼쪽에서 두 번째 빨래하는 여자의 손을 보세요. 빨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중에 떠 있잖아요. 그리고 왼쪽 첫 번째 여자의 등 쪽에 칠해진 물감을 보면 붓질이 물길을 따르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엉성하게 그려져 있지요.”
서울옥션이 미공개작으로 지난 2007년 5월 경매에서 최고가로 판매했던 <빨래터>는 1954년 그려진 박수근의 <빨래터>가 아닌 1950년대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빨래터>와 ‘닮았다.’ 하지만 황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미공개작 <빨래터>는 1954년 그려진 박수근의 <빨래터>와는 달리 어설프다. 1954년작 <빨래터>에 그려진 여인들은 박수근 특유의 견고한 형태를 볼 수 있는 반면, 미공개작 <빨래터>에 그려진 여인들은 그 견고한 형태를 볼 수 없다. 그리고 미공개작 <빨래터>에 표현된 물줄기를 보면 1954년작 박수근의 <빨래터>에 그려진 깊이감을 볼 수 없다. 단지 3개의 선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근데 ‘어설프다’는 것은 몸에 ‘익숙치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평생 그림만 그린 박수근이 자기 몸에 익숙치 못한 그림을 그린 것이란 말인가?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빨래터>의 비하인드 스토리
서울옥션 제106회 일반 도록에는 미공개작 <빨래터>에 관한 출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빨래터’는 생전 박수근으로부터 이 작품을 직접 받은 후, 약 5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소장자로부터 나왔다. 당시 소장자는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 등을 지원했으며, 박수근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작품을 선물했다고 소장자는 전했다. 소장자는 박수근이 이 작품을 전달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프레임에 그가 가장 좋아하시는 백합꽃 색을 칠했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옥션 제106회 특별판 도록에는 미공개작 <빨래터>에 관한 출처와 스토리(Provenance & Story)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이번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 ‘빨래터’는 생전 박수근으로부터 이 작품을 직접 받은 후 약 5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소장자로부터 나왔다. 당시 소장자는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 등을 지원했으며, 박수근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작품을 선물했다고 소장자는 전했다. 소장자는 박수근이 이 작품을 전달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 두 도록에 실린 출처에 관한 진술 사이에 차이가 하나 있다. 일반 도록에서 박수근이 프레임에 “가장 좋아하시는 백합꽃 색을 칠했다”고 한 반면, 특별판 도록에는 박수근이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도 밝혔다. 왜 서울옥션 측은 일반 도록에 ‘백합꽃 색’으로 밝힌 반면, 특별판 도록에서 ‘흰색’으로 밝힌 것일까?
‘흰색’이 ‘백합꽃 색’으로 변신한 비하인드 스토리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 등을 지원”했다는 소장자는 누구일까? 서울옥션은 경매에 내놓은 미공개작 <빨래터>의 80대 미국 소장자의 신원뿐만 아니라 45억2000만원에 낙찰 받은 (전화)응찰자의 신원 역시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중앙일간지들은 미공개작 <빨래터>를 “미국에 사는 80대 소장인이 박 화백 생전에 직접 선물로 받아 50여 년간 간직해 온 것”으로 보도했다. 그렇다면 80대의 미국인 소장자는 서울옥션 측에 영어로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옥션 측이 그 소장자의 진술을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데 왜 서울옥션 측은 일반 도록에 ‘백합꽃 색’으로 번역한 반면, 특별판 도록에서 ‘흰색’으로 번역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특별판 도록에는 박수근 장남인 <박성남이 말하는 아버지 박수근과 하얀 프레임>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께서 소장자에게 이 작품을 건네시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직접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고 들었는데, 이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꽃이 백합입니다. 흰색의 그 꽃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 그리고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흰색을 프레임에 직접 칠하시면서 소장자에 대한 아버지의 진실된 마음을 다시 한번 새겼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박성남 씨의 진술을 따른다면, 서울옥션 측은 미국 소장자로부터 박수근이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는 말을 서울옥션 측으로부터 전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흰색 프레임’에 대해 박성남 씨가 말한 ‘백합’을 서울옥션 측이 일반 도록에 ‘백합꽃 색’으로 받아쓰기한 셈이 된다. 물론 박수근이 프레임에 칠한 색이 백합꽃 색이냐 흰색이냐가 진위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K 감정위원 왈, “미공개작 <빨래터>의 진위 여부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수근 화백이 미공개작 <빨래터>를 소장자에게 전달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프레임에 흰색을 칠했다는 말을 했다고 했는데, 그 미공개작 <빨래터>를 적외선형광분석기에 10여분만 넣어보면 그 프레임에 칠해진 재료가 50년 전의 색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그림은 우리 ‘문화재’이다!
1995년 시공사에 발행된 <박수근> 도록에 박수근의 미공개작 <빨래터>와 거의 같은 공개작 <빨래터>가 실려 있다.(도판5) 언듯 보면 그들이 마치 같은 그림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세심히 본다면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두 그림의 화면 왼쪽과 오른쪽 측면을 보시라. 미공개작 <빨래터>는 시공사 <빨래터>에서 부분 절단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시공사 <빨래터>의 왼쪽 여인 손앞에 공간이 더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시공사 <빨래터>의 물줄기 ‘선’들을 보라. 박수근은 물줄기 선들을 어둔 바탕색 위에 두터운 마티에르로 표현하여 마치 그려진 선처럼 드러나게 한다. 하지만 미공개작 <빨래터>의 선은 그냥 그어진 선일뿐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발생했다. 왜 서울옥션 측은 다양한 <빨래터> 사례들 중에서 시공사의 <빨래터>를 제외시킨 것일까? 시공사의 <빨래터>는 서울옥션 측이 비교대상으로 제공했던 여타의 <빨래터>보다 거의 같게 그려진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서울옥션 측은 왜 비교대상으로 제공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그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 같다. 1. 시공사 <빨래터>를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서울옥션의 전문성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서울옥션의 무능을 반증한다고 말이다. 2. 알고 있었지만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았다. 비교사례로 그와 유사한 <빨래터> 그림들과 드로잉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공개작 <빨래터>와 가장 비슷한 시공사 <빨래터>를 비교사례로 제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박수근은 이중섭과 함께 ‘국민화가’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문화재’가 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미공개작 <빨래터>의 진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만큼 서울옥션을 통해 <빨래터>를 45억2000만에 낙찰 받은 소장자는 감정협회를 통해 진위감정을 받기 바란다. 글 류병학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