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온-진실은 외경속에 있다.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icon 2009/01/29 에 해당하는 글2 개
2009.01.29   친딸을 누드모델로 내세운 중국화가 9
2009.01.29   [오늘의 미술] 실물보다 더 강렬한 조각 - 조훈


icon 친딸을 누드모델로 내세운 중국화가
그림이야기 | 2009. 1. 29. 12:0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에서 친딸을 누드모델로 작품을 만든 화가를 두고 윤리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뉴스 사이트인 온바오뉴스의 보도 내용입니다.

쓰촨(四川)의 화가 리좡핑(李壮平) 씨와 그의 친딸인 리친(李勤) 양이 공동으로 제작한 유화작품 '동방신녀산귀 시리즈(东方神女山鬼系列)'에 나오는 나체 모델이 리 화가의 친딸인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논란에도 리씨 부녀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나체모델을 한 리친 양은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몸매가 아름다워 모델을 해보라는 권유에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 믿을 수 있는 아버지의 유화작품에서만 나체모델을 하기로 결정했다."며 "아버지의 예술에 몸을 바치는 것을 아주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버지 리씨는 "이번 작품의 동방신녀에 딸의 모습이 근사하여 부인과 딸의 동의를 거친 후에 창작을 했으며 예술로써 생각을 했지 윤리적인 부분은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우리들이 흔히 누드를 대할때에는 가상의 연인을 대하듯 하는데
만약 친딸의 누드를 보고 있다고 연상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되겠죠.

화가에게 작품을 하면서 윤리를 강조한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인상파화가 마네는 올랭피아에서 창녀를 그려서 윤리논쟁에 휘말리면서 매도 당했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당시 파리지앵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에곤 쉴레는 미성년자의 누드를 그렸고, 청소년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간 적이 있습니다.

리죙핑의 작품이 그런 의미에서 미술사에 의미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의 작품을 보니 그림 그 자체는 별로중에 별로더군요.
나니아 연대기도 아니고... 

작품성에 관계없이 여러분도 그의 작품을 보면서 자기 딸의 누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요. 모멸감을 느끼셨다면 어쩌면 화가의 의도가 성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터뷰내용을 보면 화가의 의도가 그 것은 아니었던 같긴 하지만..


그림은 아래에..



관련 사이트 : http://www.onbao.com/dongbook/Article/2009/01/21/20261.html



arrow 트랙백 | 댓글



icon [오늘의 미술] 실물보다 더 강렬한 조각 - 조훈
그림이야기 | 2009. 1. 29. 08:4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녀 Girl, 조훈, F.R.P, 80x150x5cm, 2007



한 소녀가 슬립이 벗겨진 상체를 드러내고
하반신은 관객들에게 여보란듯이 내보이고 잇다.

그림과 달리 부조이기 때문에 소녀가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이보여서
더 성적인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위 작품은 조훈의 소녀라는 작품이다.

그는 성매매업소의 각종 찌라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모델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작품들은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부조는 환조처럼 전신을 조각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실감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들이지만
조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강렬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최경태 만큼 노골적이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만드는 태도가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훈의 부조작업 를 정면이라는 단일 시점에서 보게 되면 관람자는 이러한 부조 자체의 본질로 인해, 몸짓이 내포하는 모든 의미, 즉 형태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일종의 전능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전능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관람자가 부조를 보기 위해서는 그 앞에 서야만 한다. 이는 부조의 정면성이 지닌 시선의 폭력성과도 관련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말하듯, 부조에서 중요한 것은 관람자가 실제로 조각의 주위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그는 그 형태를 한 바퀴 돌면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만큼의 정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한번의 지각작용에 의해서 덩어리들의 전개양상과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데 조훈의 작업에서 관객이 느끼는 전지전능함이란 곧 부조가 갖는 시선의 정면성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조훈의 첫번째 작품전시회 Come to My Penthous 리플렛에서 양지훈 글






arrow 트랙백 | 댓글



[PREV] [1] [NEXT]
관리자  |   글쓰기
BLOG main image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을 뿐이다.
분류 전체보기 (439)
정치 (6)
언론 (32)
즐거운인생 (21)
인문 (130)
보건의료 (11)
인물 (16)
영화 음악 (97)
엑스리브스 (5)
가족 (5)
그림이야기 (73)
shutter chance (16)
apocrypha (1)
축구 (0)
Total :
Today :
Yesterday :
rss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 관리자
marcion's Blog is powered by Daum / Designed by plyfl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