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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 2
2008.08.15   [오늘의 미술] 누가 영생을 원하는가?


icon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
인문 | 2009. 2. 17. 09:32
김수환추기경이 어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실었군요. 그가 현대사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상한 용어 하나가 신경을 거스르게 하네요.

바로 선종善終이라는 표현인데...

선종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망때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선종은 카톨릭에서 높은 지위의 성직자가 죽음을 맞이할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으로 보입니다.


선종 善終 : 가톨릭에서, 임종할 때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大罪)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이르는 말.


성직자들의 죽음을 일반신도와 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불교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고승高僧이라도 죽게되면 열반槃, 입적入寂 이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열반  :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하는 경지.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 경지.

입적 入寂 : 열반에 들다

위 용어들은 일반 신도의 죽음에서는 쓰이지 않고 보통 고승(高僧)의 죽음에서만 쓰지요. '입멸(入滅)' '귀적(歸寂)' 등도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특별한 용어가 보이지 않는 군요. 개신교는 원래 성직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전통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대형교회처럼 목사들이 예수처럼 행사하는 권력자들인 만큼 그들도 곧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 않을까요?

보통 권력자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 죽으면 보통 서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별다른 뜻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는 보통 죽었다라는 한자어 사거死去의 높힘말입니다.

서거 逝去  <사거(死去)>의 높임말.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 사망.


한자어에는 유독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들이 많습니다. '별세(別世)' '운명(殞命)' '절명(絶命)' '기세(棄世)' '영서(永逝)' 임종(臨終)' '작고(作故)' 등등
이들 용어들은 죽음을 바라보는 당대의 철학을 반영하기도 하고, 신앙관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존귀한 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뜻에서 높혀 부르기 위해서 다양한 한자어들이 등장 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무릇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성이 높은 사람들의 죽음을 높혀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르지만 만약 외국언론이었다면 'Dead' 로 간략하게 표현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죽음을 다른식으로 표현해온 것은 중국문화권의 오래된 관습인데, 이것이 서양에서 유래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 문화에 전염 된 모양입니다.

사서오경중에 하나인 예기에서는  '예기(禮記)'에서는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는 졸(卒), 사는 불록(不祿), 서민은 사(死)라고 규정하였다고 합니다. 철저한 계급사회다운 발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도 용산참사처럼 일반인이 죽으면 '사망(死亡)'이고 대통령쯤 되는 위인이 죽으면 '서거(逝去)'고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타계(他界)'나 '영면(永眠)'이라는 표현으로 신분에 따른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죽었는데 신분에 따라 죽음 뜻하는 용어도 다르다는 것은 막 청동기를 벗어난 기원전이나 인터넷시대인 현대에도 한국사회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죽은 이를 높이는 것은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지만, 지위를 가지고 쓰는 말을 달리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추기경의 죽음도 선종이면 일반 카톨릭신자의 죽음도 선종이어야 합니다. 그 말뜻 그대로였는 선종이었는지는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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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오늘의 미술] 누가 영생을 원하는가?
그림이야기 | 2008. 8. 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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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Seub_Who wants to live forever 01_Digital LightJet Print_2m x 153 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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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Seub_Who wants to live forever 07_Digital LightJet Print_122 x 150 cm_2008



죽음은 영원한 공포이고,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은 죽음의 공포를 극대화 시키면서 등장한다.

그래서 종교는 "영원한 삶"을  약속하면서 안식을 주려하지만. 역으로 종교는 죽음의 공포를 상품화시켜
장사하는 협잡에 불과하다.

절대권력, 의과학 역시 영원한 삶을 약속하지만 그것은 우리 육체에대한 고문과 고통을 요구할 뿐이다.

한국 근현대화 과정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 연출 사진의 형태로 작업을 해온 조습의 3번째 개인전 때 출품된 작품들이다.



관련글 : 명랑한 신세대 민중작가 - 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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