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컴퓨터선교회 에서 2005년말 통계청이 실시한 자료를 이용해 작성한 대한민국복음화지도 이다.
8단계의 색 구분으로 복음화율이 저조한 9%미만에서 18%미만을 빨간색으로 표시하였고 이후 노란색까지 4단계로 구분하여 붉은 계통이 강할 수록 비복음화된 지역으로 표시했다. 파란색 계통은 연두색 18%이상에서 시작하여 파란색 30%이상지역으로 구분하여 파란색이 강해질수록 복음화율이 높게 보이도록 구분했다.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제일 높은 지역은 전라남도 신안군으로 35.1%이며 그 다음은 경상북도 울릉군 31.7%, 전라북도 익산시 31.4%, 군산시 31.2%, 김제시 30.3%로 뒤를 이었으며 그 외 지역에서는 과천시가 30%,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30%로 전국 합계 30%을 넘는 지역이 7개지역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강서구, 강동구가 25.4%로 제일 높게 나타났으며 제일 낮은 지역은 동대문구로 18.8%이다. 전국에서 제일 낮은 지역은 경상남도 합천군으로 5.1%에 불과했다. 중국 개신교가 6.6%, 미얀마 7.3%, 말레이시아 5.2%인 것에 비하면 선교지보다 더 낮은 수치이다. 전국 시, 도별로 복음화 율이 제일높은 곳은 전라북도로 26.3%, 서울특별시 22.8%, 인천광역시 가 22.4%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 10년동안 개신교가 성장한 지역은 전라남도로 1995년 20.5%에서 2005년 21.9%로 나타났다. 제일 많이 감소한 지역은 인천광역시로 1995년 25.8%에서 2005년 22.4%로 3.4%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감소된 수치가 나타난 것이다. 이 외에 지역에서는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1.3%에 해당하는 143,628명이 감소했다. 1999년과 2005년사이에 교회가 감소한 지역은 서울지역이 유일하다. 조사된 전국통계로 복음화율이 제일 높았던 시기는 1995년도로 19.6%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나자프(Najaf)에서 한 시아파 이슬람교도가 ‘아슈라(Ashura)’를 맞아 칼로 자신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아파의 가장 중요한 종교행사중에 하나죠. 모하마드의 손자인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기리는 행사로 10일간 계속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가난한자, 병든자, 아파서 고통받는자를 볼때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물음은 신의 존재를 논할때 반드시 거론되는 사안입니다. 신자들은 절대선의 존재인 바로 그에게서 왔다고 주장하지요.
에코는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타자가 우리속에 있다"는 확신은 감정적인 성향이 아니라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타자이며 타자의 시선입니다. 인문과학중에서 가장 세속적인 학문조차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먹지 않거나 자지않고는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타자의 시선과 응답이 없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인하고 강간하고 모욕하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예외적일때만 그런 짓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남에게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구걸합니다.
(중략)
비신앙인들은 아무도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는 이 세상에 자기의 죄를 용서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만일 그가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리고 그런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그의 고독은 무한할 것이며 그의 죽음은 절망적일 것 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신앙인보다 더 과감하게 죄를 고백하면서 타인들의 용서를 구하고 죄를 씻으려 할 것입니다. 그는 그런점에서 마음 깊이 깨닫고 있기에, 남의 용서를 구하기전에 자기가 남을 먼저 용서해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그의 윤리론은 비신앙인들이 초월적인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선함을 갖게 하는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식은 굳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세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대립함에 있어서 진정으로 힘을 발휘 해야하는 것은 '이웃사랑'과 '깊은 사려'라고 주장합니다.
소비자 주권개념은 여전히 경제교육에서 인정받는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경제체제를 변호할때 쓰인다. 수요곡선과 방정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략) 그러나 시장경제가 소비자에게 주권이 있는 체제라는 믿음은 우리사회에 가장 만연한 사기중에 하나이다. 소비자를 조종하고 통제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물건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용어가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역사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업대변인, 신중한 정치인, 일부 언론인들은 이제 경제체제를 '시장체제(market system)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더구나 명민하고 의견이 분명한 체제 옹호자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시장체제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었고 미화되었다. 이 표현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유산과 그들의 열렬하고 뛰어난 추종자들에게서 경제체제를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신약성서를 이야기할때 공의회가 복음서 저자들이라 명명한 사람들 뿐만아니라 사이비 복음서 저자들이라고 판정한 사람들것 까지 그리스도의 모든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었구나. 그 사이비 복음서 저자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려 했고, 너는 공의회 성직자들의 이성이 아니라 네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그들의 주장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지.
조승수전의원이 민노당의 자주계열을 "친북세력"이라 규정하면서 분당이라는 극한 용어를 사용한 인터뷰기사가 조선일보 1면 상단에 실려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날나리 당원으로서 민노당이 분당하던 말던 저의 관심밖입니다. 저에게 중요한것은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치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때 민주노동당은 저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당임에 분명하지만 민주노동만이 그런 정당이다라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보세력은 다종 다양하고 때론 분열하고 때론 단결하면서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정세로 보면 아마 자주파를 친북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탈당한다면 그런 좌파역시 그들의 선택이지만 민중당이 그랬던 것처럼 소멸할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둘은 같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지 별도가 되면 다른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파국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승수전의원이 "친북세력"이라고 하는 극히 "조선일보스런" 용어를 사용한점에 주목합니다. 극우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정치인들이 말이나 글을 쓸대 항상 유념해야할 것이 극우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것도 문제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정치적 동지를 비판적인 용어가 아닌 적대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조승우의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조지 레이코프가 지은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을 다시 떠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실천해야할 11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1.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데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성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합시다.
2."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우리의 경우 한나라당, 조중동등을 생각하지마라는 경구로 기억하면 될듯)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3.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통하지는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4.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해 말해야 합니다.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5. 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별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 하십시오. 개별적인 정책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7. 정책안의 결과에 숙고하십시오.
8.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9.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진보적 사고의 여섯가지 유형 즉 사회경제적, 정체성정치, 환경주의, 신민의 자유, 영적, 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 해봅시다.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형이 무엇인지- 나와 내주위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인지 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10. 수동적이 되지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항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1.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가치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켜 도리어 보수주의 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다소 길지만 한국사회의 진보주의자들도 얼마든지 새겨 들어야 하는 말들입니다.
작은 차이를 크게 부풀려 아와 비아를 나누는 버릇은 진보세력의 가장 큰 고질병입니다. 서로 기반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의 도움없이 우린 성장할 수 없습니다.(요즘 분위기론 성장이 아니라 생존할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민노당이나 통합신당이나 각자 분열보다는 단결의 구심을 찾길 바랍니다.
용어가 불러 일으키는 불쾌한 역사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경제학자, 기업대변인, 신중한 정치가, 일부 언론인들은 이제 경제체제를 '시장체제(market system)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더구나 명민하고 의견이 분명한 체제옹호론자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시장체제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되어 있고, 미화되어 있다. 이 표현은 자본가권력의 불미스런 역사를 감추고 마르크스 엘겔스의 유산과 그들의 열렬하고 뛰어난 추종자들에게서 경제체제를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오늘 아시는 분이 화랑도이야기를 하길래 갑자기 생각나서 전에 썼던 글을 옮겨봅니다. -----------------
오마이뉴스에 황산벌영화가 뜨면서 관창과 파병문제를 연관지은 기사에 대한 것을 읽고, 화랑은 태권도가 허구의 가상이듯이 화랑역시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허구의 역사라며 반박하면서 인용한 글입니다.
재미있을 거에요.
신복룡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 (2)화랑과 상무정신
[동아일보] 2001-04-07 (특집) 기획.연재 15면 05판 3469자
학자는 정직해야 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갈릴레오 이래 많은 학자들은 할 말을 못하고, 안 할 말을 해야 하는 일을 수없이 많이 겪었다. 역사학도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예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청년 문화’라고 칭송받는 신라시대 화랑(花郞)에 대한 해석이다. 기존 한국사에서 평가되는 화랑의 모습은 호국의 꽃이었고, 청년 문화에 대한 찬사의 극치였다.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화랑이 그토록 극찬을 받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역사학자는 1920년대 단재 신채호(申采浩)였다. 이어 1930년대 일제 치하 일본 역사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화랑을 거론할 때만 해도 그렇게 찬란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저 화랑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청년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이었으며 나중에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역사학자 이선근(李瑄根) 대령에게 한국사에서 청년 문화의 유산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명칭 바뀐후에도 계속 여자▼ 이에 따라 이 대령이 ‘화랑도연구’(1954)를 출판했을 때 화랑은 하루 아침에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청년 문화의 유산으로 부상했다. 그의 주장을 빌리면 이충무공(李忠武公), 개화파, 독립협회, 동학혁명, 3·1운동이 온통 화랑 정신을 빛낸 사람들이나 사건들이었다는 것이다. 화랑의 본래 모습이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화랑이 당초 여자였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최초의 화랑은 원화(源花)라고 불렸으며, 그들이 하는 일은 추석때 서라벌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패를 갈라 길쌈내기를 하던, 이를테면 부락 축제의 리더 역할이었다. 처음 원화가 된 사람은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라는 두 명의 여자였다. 그러던 것이 부락제가 국가적 행사로 자리를 잡고 규모도 확대됨에 따라 원화는 화랑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화가 화랑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화랑은 여자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1’을 보자. 이것은 ‘삼국유사’ 원본 중에서 화랑에 관한 부분을 복사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화랑이 ‘花郞’이 아니라 ‘花娘’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번째의 열쇠가 된다. ‘꽃 같은 여자’라는 말은 있어도 ‘꽃 같은 남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화랑은 ‘花娘’이라고 쓰는 것이 옳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화랑을 ‘花郞’이라고 표기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삼국유사’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헌을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라나 고려 시대 사람들은 ‘花娘’을 어떻게 발음했을까? 우선 ‘사진 2’를 보자. 이 책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후 한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동국정운’(東國正韻·국보 142호)으로 여기에는 ‘娘’을 ‘냥’이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최고의 어문학자였던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사진3)와 조선조 후기 음운학자 정윤용(鄭允容)의 ‘자류주석’(字類註釋·사진4)에도 ‘娘’은 ‘냥’으로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花娘은 어떻게 발음되었을까? 신라의 이두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까지도 그것은 ‘화냥’이었다. ‘화랑’이 아니라 ‘화냥’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얘기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현대 어문학의 태두인 양주동(梁柱東)은 필생의 저작인 ‘조선고가(古歌)연구’(1954)를 발간한 후 “내가 죽은 후 1세기 안에는 이 책의 일점일획도 고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국보(國寶)라고 칭했다. 그는 이 책에서 화랑을 언급하면서 ‘화랑이 한때 타락해 화냥의 칭호를 들었다’(372∼374쪽)고 기록했고 이선근도 그렇게 풀이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화랑은 당초부터 화냥이었지 화랑이 타락해 화냥이 된 것이 아니다. 그후 삼국 중에서 신라에만 특유하게 존재하던 모계 중심 사회가 점차 퇴조를 보이면서 화랑도 남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때는 이름도 국선(國仙)으로 불렸으며 그 최초의 인물이 설원랑(薛原郞)이었다. 화랑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무(尙武)정신과 같은 남성 문화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화랑의 선발 기준은 여전히 ‘얼굴이 고운 남자’(삼국사기 진흥왕 37년조)였다. 화랑이 진정 무사도였다면 왜 우람한 남자를 뽑지 않고 얼굴이 고운 남자를 뽑았을까? 그것은 모계 사회의 풍습 때문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던 모계 중심의 부족 사회에서의 여왕은 부락장인 동시에 제주(祭主:무당)였고 의녀(醫女)였다. 따라서 신라의 여왕은 이미 그의 주신(主神)에게 출가한 몸이므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왕이 혼자 잠자리에 들 수는 없었고, 그 얼굴 고운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했다. 신라의 여왕들, 특히 진성여왕과 그 얼굴 고운 남자들 사이에 벌어진 진한 에로티시즘에 관한 얘기는 ‘삼국사기’ 진성여왕편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위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화랑을 다루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의 어디를 봐도 화랑과 세속오계를 관련지어 설명한 곳이 없다. 미시나 아키히데의 저서 ‘신라 화랑의 연구’에는 세속오계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세속오계란 화랑과 무관한 서민 청년들의 생활 규범이었다. 세속오계가 화랑의 계율이었다는 것은 이선근의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였을 뿐이다.
▼고려시대땐 '병역 면제'▼ 내가 화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신라 후기가 되면서 화랑이 국선으로 변하고 다시 고려조에 들어오면 국선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주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였다. 그것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당시는 남자들이 이리저리 군대에서 빠지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부친이 사망한 부선망(父先亡) 4대 독자로 현역에 복무한 나로서는 병역 면제자 ‘화랑’을 상무 정신의 화신처럼 설명하고 있는 한국 역사학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조선조에서 화랑은 엉뚱한 뜻으로 사용됐다. 다시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나오는 ‘사진5’를 보자.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격(覡)이라는 글자는 오늘날 박수무당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화랑’이라고 풀이했다는 것은 그 당시에 박수무당을 화랑이라고 불렀음을 의미한다. 같은 무당이라고 하더라도 박수(白手)무당은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한량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파생됐다. 망국의 비분강개함을 느끼며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화랑의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신채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나가게 하기 위해 화랑을 무사도로 미화한 이선근의 논리는 분명 ‘빗나간 애국심’이었다. 차라리 고구려의 당나라에 대한 끈질긴 항쟁에서 청년의 기백을 찾는 것이 더 온당한 필법이었다. 건국대 교수(정치외교사)
totquf
아주 흥미있는 글이네요. 화랑에 대해서는 간간히 글을 보았는데, 역사적 맥락을 짚어 설명한 글을 보게 되었군요.
이데올로기적인 필요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의도한 목적에 맞게 조작된 대표적인 사례로 읽히는군요.
군대에서 명령에 따라 선전,선무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정훈장교가 한 일이니 오죽 잘했을까요.
2003/10/25
홍춘택
관창과 화랑은 어떤 관계? 관창이 사실은 여자?
2003/10/25
icarus
화랑이 성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 제도권 밖의 매춘부를 '유녀 (遊女)' 와 '화랑 (花郎)' 이라고 부른 것에도 알 수 있습니다. 화냥년의 어원이 고려시대 포로끌려가서 돌아왔다는 還鄕女(환향녀)에서 유래한다고 배웠지만 실은 호랑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화랑이 화냥으로 읽혔으니까요. 그리고 화랑이라는 말이 매춘부를 가르켰기 때문입니다.
화랑은 남자죠. 전쟁터와 같이 '신성한곳'은 여성이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의 성적욕구불만해소를 위해 여자들을 대리고 다니기 보다는 정복지의 여성이나 얼굴이 예쁘게 생긴 남성들을 대리고 다닌 것은 로마군을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군대들에게서 상당부분 공통으로 발견됩니다.
관창역시 그러지 않았을까요? 로마시대 유명한 장군이들이 대부분 그들 미소년출신이듯이 그들은 결코 신분적으로 낮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화랑역시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요?
매춘부는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 때도 존재했다. 그중 기녀 (妓女) 는 이를테면 '제도권내의 매춘부' 였으며, 제도권 밖에는 '유녀 (遊女)' 와 '화랑 (花郎)' 이라고 불리는 매춘녀들이 있었다.
2003/10/26
icarus
신복룡씨가 지은 "한국사 새로 보기(풀빛)"을 꼭 사서 읽어보세요.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한국인은 단일 혈통이 아니다' '화랑은 모계 사회의 궁남宮男들이었다' '의자왕義慈王과 3천 궁녀의 허구' '빗나간 신라중심사와 약소 민족의 논리'등이 재미있게 쓰여 있습니다. 실증적인 기법에서 기존 학설을 비판하는 그의 글은 무척 도전적이고 일격에 타인 제압하는 날카로운 劍과가 같은 글들입니다. 직접사서 읽어 보세요.
2003/10/26
icarus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박정희가 죽은 날이군요.
박통때 기억으로는 국가대표 축구팀을 1팀 2팀으로 나누었는데 1팀의 이름은 '화랑' 2팀은 '충무'였지요.
화랑도의 한자어도 원래 삼국유사에는 花娘徒로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가 배운 국사책에는 花郞道로 되어 있었지요. 세속오계를 들먹이며 '무리'나 '떼'를 의미하는 도가 근엄한 단어로 변신한 것이지요.
배움에 대한 흥분이 젊음과 늙음을 구별한다. 배우고 있는 한 당신은 늙지 않는다. The excitement of learning separates youth from old age. As long as you’re learning, you’re not old.
- Rosalyn Sussman Yalow 로절린 얄로우 -
로절린 얄로우에 대하여
로절린 얄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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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citement of learning separates youth from old age. As long as you’re learning, you’re not old.
배움에 대한 흥분이 젊음과 늙음을 구별한다. 배우고 있는 한 당신은 늙지 않는다. -로절린 얄로우(1921~ ) : 미국의 물리학자, 의학자, 노벨상 수상자-
앞부분을 알기 쉽게 해석하기가 곤란하네요.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젊음과 늙음은 배움에 대한 흥분의 정도로 구별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젊었는지 늙었는지를 알려거든 배움을 통해 흥분을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배움에 흥분을 느끼는 한 사람은 늙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뜻이겠죠?
과학자가 연구를 통해 지대한 업적을 남기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흥분이 있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실험실에서 자기와의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 속에서 하나 둘씩 배우고 발견하는 기쁨 속에서 과학자들은 행복을 만끽합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비밀도 있고 우주를 푸는 열쇠도 있습니다.
하긴 따지자면 모든 학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사막의 탁발승만큼이나 외롭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탁발승(mendicant priest, begging priest)이 뭔지는 아시죠? 허술한 차림에 목탁을 두드리며 걸식을 하는 불교의 스님이 생각납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탁발승은 왜 외로운 것인가요? 또 학문은요?
탁발(托鉢)은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12두타행) 가운데 걸식이 있습니다. 구걸하는 것이죠. 탁(托)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탁자(托子, table)가 그렇습니다. 발(鉢)이란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鉢盂)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탁발승이란 걸식을 통해 얻은 음식이 담긴 발우에 의지해 살아가는 승려를 뜻합니다.
불교에서 수행자에게 탁발을 생활수단으로 규정한 것은 그들이 상업활동은 물론이고 어떤 생산활동에도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탁발을 통해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고 수행의 가장 큰 적인 자만과 고집을 없애야 한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겁니다.
기독교에도 탁발이 있습니다. 탁발수도회(Ordines mendicantium)가 그것이죠. 평화의 기도로 잘 알려진 1210년 무렵의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1216년 도미니쿠스가 창설한 도미니크 수도회가 있습니다. 부와 세속적 권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종교와 삶의 길을 추구하자는 것이죠. 청빈생활을 했던 프란체스코는 우리나라 초의선사처럼 새들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도회에 대해 이단 시비를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간디가 말하기를 “백년마다 프란체스코와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나타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졌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학문의 길에 접어든 사람을 탁발승으로 표현한 것은 돈이나 명예와 관계없이 학문 자체에서 깨달음과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탁발승과 관련한 이 말은 서양에서 나온 겁니다. 이야기가 빗나갔네요. 오늘의 주인공 로절린 얄로우(Rosalyn Sussman Yalow)로 갑시다.
In the past, few women have tried and even fewer have succeeded(과거에 도전을 시도한 여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성공한 여성은 더욱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이 노벨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위 환경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리 큐리처럼 남편과 같이 공동으로 상을 받는다든가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공하는 게 그러한 사례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리아 메이어(Maria Mayer)는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경우입니다. 원래 집안도 교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환경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절린 얄로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여성들의 아버지는 건축사, 의사, 치과의, 그리고 대학 교수 등 돈도 잘 벌고 명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얄로우의 부친은 유태인으로서 미국으로 이민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종이를 파는 장사꾼이었습니다.
▲ 가난을 극복하고 노벨상의 영예를 안은 얄로우. 그래서 그의 영예는 더욱 값진 것이다. ⓒ
I have long felt that the trouble with discrimination is not discrimination itself, but rather that the people who are discriminated against think of themselves as second-class(내가 오랫동안 느낀 것은 차별의 문제는 차별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차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이류 계층(하층)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이다).
유태인들의 저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노벨상과 유태인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고요.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노벨상 수상 여성과학자 세 명 중 두 명이 유태인입니다. 기독교도는 1983년 노벨 의학 및 생리학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턱(Barbara McClintock)입니다.
그런데 2천년 동안 객지에서 헤매다가 다시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태인들이 자신을 유태인이라고 하는 근거는 뭘까요? 유태교를 믿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주장하는 전설 속의 조상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인가요? 유태인이면서 기독교를 믿는다면 그 사람을 유태인이라고 하나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흑인들 가운데도 유태교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태인은 혈통의 개념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유태인들은 왜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과 같이 앵글로 색슨처럼 보일까요?
이와 반대로 모슬렘은 종교의 개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흑인이든 아니면 황인종이든 간에 같은 이슬람교를 믿으면 모슬렘의 형제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의미로 본다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쪽은 2천년간 유랑했던 유태인들이 아니라 중동에 터전을 두고 살아온 이슬람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2004년 영국의 한 연구팀이 첨단 법의학 및 컴퓨터 기술을 동원해 예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이 BBC에 방영하기 위해 그린 예수의 얼굴은 뭉툭한 코에 짙은 갈색 피부, 짧은 고수머리를 한 전형적인 유태인 농부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로부터 원망을 사기도 했죠
연구팀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부근에서 도로공사 중 발견된 1세기로 추정되는 유대인들의 두개골을 참고로 그렸다고 합니다. 아마 존재했다면 아브라함도 그런 얼굴이고 모세도, 솔로몬도 비슷한 얼굴일 겁니다. 14세기가 지난 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12제자와는 전혀 딴 판이죠.
다 빈치가 영감을 갖고 그렸든, 계시를 받고 그렸든 간에 허구에 가까운 그 그림을 갖고 인간은 흥분합니다. ‘다 빈치’의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우상을 금기시하는 유태교와 기독교의 전통 때문에 예수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다가 자유의 문이 열린 르네상스를 맞아 다 빈치가 최초로 예수의 얼굴을 그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요.
우리나라는 유태인에 대해서 편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모범적인 모델 국가로 생각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합니다.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입니다. 물론 많이 달라졌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presidential candidate)로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유태인은 기독교가 가장 싫어하는 악마(devil), 마녀(witch) 그 자체였습니다. 마녀사냥(witch hunt)의 대표적인 제물이 유태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태인이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치가 6백만에 달하는 유태인을 학살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인간의 가장 비타협적이고 이기적 속성인 종교가 많은 작용을 했습니다. 유태인은 미국에서 학계, 정계, 언론, 그리고 특히 석유산업 등 재계에서 돈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좋은 분야죠.
그러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마피아에서도 유태인의 활약상은 대단했습니다. 어쨌든 유태인이 생존력과 혈통을 이어가기 위해 자식을 낳고 기르는 번식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자본주의는 유태인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 시대에 유태인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지만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유태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We must believe in ourselves or no one else will believe in us; we must match our aspiration with the competence, courage, and determination to succeed(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믿을 것인가.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능력, 용기, 결단을 열망과 연결시켜야 한다).
얄로우는 1977년 로저 기유맹(Roger Charles Luois Guillemin) 박사와 앤드루 샐리(Andrew Victor Schally) 박사와 함께 의학 및 생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뇌의 시상하부에서 만들어지고, 다른 호르몬 분비선들의 작용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리하고 합성한 공로 때문입니다. 얄로우의 업적은 방사성면역측정법(radioimmunoassay) 개발입니다.
원래 일리노이대학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얄로우는 졸업한 후 브롱크스 재향군인 병원의 방사성동위체 연구실에 근무하면서 혈중 인슐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합니다. 그녀의 인슐린 항체존재설은 비상식적이라고 해서 부정됐지만 그것을 위해 개발한 방사성면역측정법은 많은 분야에서 지금도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업적이 노벨상 수상을 가능케 한 것이죠.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란 얄로우는 성격이 특이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그 빈민가를 좋아했습니다. I have always resided and worked there except for three years and a half when I was a graduate student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Perhaps the earliest memories I have are of being a stubborn, determined child(일리노이 대학 대학원생이었을 때인 3년 반을 빼놓고는 거기에서 계속 살고 일했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는 아마도 고집이 강하고 완고한 애였다).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원래 수학에 흥미가 있었던 얄로우는 좋아하는 선생님이 화학 선생님이라서 화학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도 화학을 전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그녀가 살던 지역에 있는 헌터(Hunter) 여자대학에는 화학과가 없어 물리학을 전공합니다. 일리노이대학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얄로우의 인슐린에 대한 지식은 브롱크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얻은 게 전부입니다.
가난하게 자란 얄로우는 책을 맘대로 읽을 형편이 못됐습니다. I was an early reader, reading even before kindergarten, and since we did not have books in my home, my older brother, Alexander, was responsible for our trip every week to the public library to exchange already read for new ones to be read(난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도 책을 읽을 정도로 일찍부터 책을 읽었다. 집에는 책이 없었기 때문에 알렉산더 오빠가 주마다 공공 도서관에 데려다 주었다. 그래서 읽은 책을 새 책과 교환하곤 했다).
얄로우는 노벨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가운데 주위의 도움 없이 가난을 극복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유일한 여성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벨상 수상은 더욱 값진 것이죠. 사람이 현명한가 아닌가의 차이는 학벌이 아니라 독서량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과 미래도 그 속에 있습니다. 얄로우의 성공은 독서에서 시작됐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 다 아시죠? 남자라면 다섯 수레 정도 분량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말 말입니다. 남녀 가릴 것 없습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한 말입니다. 또 장자가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누가 말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